사회 사회일반

[격동의 동북아 어디로 가나] <4> 정세현 원광대 총장

"남북관계 회복이 한국외교 출구… 우리가 먼저 손 내밀어야"


남북 대립할수록 美中 발언권 커져 등거리 외교 통해 중재자 역할해야

개성공단, 北 변화시킬 전진기지 기숙사 등 추가 개발 못해 안타까워


북일협력은 日 내부 국면 전환용… 양측 접촉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어


한국 외교가 위기다. 북한은 계속되는 4차 핵실험 위협으로 정세를 불안하게 하고 일본의 우경화 행보는 동북아 긴장 상태에 기름을 끼얹는다. 동북아에서 힘을 잃어가는 미국과 급부상하는 중국 간의 갈등에 어느 편을 들 수 없는 한국 외교의 답답함은 커지고 있다. 열강의 세력 각축장으로 전락했던 100여년 전과 같은 위기라는 소리도 심심찮게 나온다. 한국 외교의 어려움을 풀어줄 묘안은 없을까. 정세현(사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은 '남북관계 회복'이야말로 이 난국을 타개할 최적의 해법이라고 조언한다. 정 전 장관은 전북 익산의 원광대 총장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한국이 미중 간 갈등을 중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이 협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북한 때문이며 중국도 미국을 압박하는 데 북한이 전략적 지렛대 역할을 하는 상황"이라며 "남북이 갈등하고 대립할수록 미중 양국의 발언권이 더욱 커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형제가 싸우면 형이 참을 필요가 있다"며 박근혜 정부가 보다 포용력을 지닌 대북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이미 한반도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며 "1970년대 중반에 이미 남북 체제경쟁은 끝났으며 지금은 국력격차가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정은 체제가 3대 세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외양과 달리 동북아 긴장과 경제성장 정체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며 "우리가 너그러운 태도로 북한에 먼저 다가가며 북한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남북관계를 어떻게 봐야 하나요.

△요즘 남북은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습니다. 양쪽 다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선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내면 안 됩니다. 올 초부터 대화를 요구하면서도 군사적 도발도 계속해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측도 책임론에서 벗어나기는 힘듭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대표적인 게 통일대박론인데 이는 북측에 흡수통일 논리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1980년대 말 독일의 통일 사례를 보면서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를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을 무기로 미국과 협상하면서 20여년간 흡수통일 공포를 피해갔는데 최근의 드레스덴 선언은 북측의 이러한 공포를 또다시 자극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결국 북한이 대화를 요청하면서 남측의 대북 제안에는 강력히 반발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보입니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엇갈린 신호를 내놓는 것은 아닌지요.

△그건 아닙니다. 김정은의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는 북측의 화전(和戰)양면 전술로 계산된 행동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 전술은 공산주의자들이 협상이나 정치를 할 때 주로 쓰는 것입니다. 다만 외형적으로 안정적으로 보이는 김정은 체제도 내부안정을 위해 경제발전 등의 활로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시안게임과 관련한 남북 협상이 잘 풀리지 않고 있는데요.

△우리 정부가 협상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측이 협상장에서 강한 자세로 나오지만 실은 약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간을 읽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아시안게임 응원단 경비 문제로 줄다리기를 벌일 때도 그들의 체면은 살려주면서 전례대로 지원해주는 등의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경비 부담이 늘어날 경우 자칫 '남남(南南)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도 북측에 알리며 협상을 주도해야 합니다.

-북한 붕괴론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인가요.

△모든 체제는 붕괴요인과 지탱요인이 같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다수가 굶어 죽을 정도로 경제사정이 악화되면 일본이나 중국이 먹여 살리는 상황에서 북한의 붕괴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일본은 북한의 붕괴로 대규모 난민이 일본 열도로 유입될 것을 우려해 대규모 식량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습니다. 실제 일본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북한 난민의 유입을 우려해 관련 훈련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중국 또한 북한이 핵실험 등으로 속을 썩이고 있지만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북한을 버릴 수 없습니다. 참고로 중국은 북한을 자기 손안에 있는 '집토끼'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때 중국이 북한이 아닌 남한을 택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것은 매우 잘못된 분석입니다. 당시 중국의 목적은 '산토끼'인 한국을 미국의 손아귀에서 빼내 대중 포위망을 약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북한은 원래 개성공단과 관련해 2,000만평의 부지를 내놓기로 했지만 지금은 100만평도 개발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남북관계 부침 때문에 발전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2007년 10·4선언 이후 개성공단에 추가적으로 노동자를 유치하기 위해 기숙사를 짓기로 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노동파업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이를 짓지 못하게 했습니다. 기숙사가 건설됐으면 개성공단 근로자 수가 최대 20만명에 육박했을 것입니다. 개성공단은 북한 주민들이 자본주의를 습득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자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진기지인데 매우 안타깝습니다.


-외교 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미국과 중국 간 힘겨루기로 우리 외교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데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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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현재 미국은 예전과 같은 힘이 없습니다. 반면 중국은 전체 국내총생산(GDP) 면에서 2020년에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크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결국 대미 외교와 대중 외교는 등거리 외교를 통해 활로를 찾아야 합니다. 현재 한국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주먹을 쓰는 오른팔은 미국이, 돈을 셀 수 있는 왼팔은 중국이 잡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향후 미국은 안보를, 중국은 경제를 각각 무기로 해 우리의 팔을 비틀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닥치면 미국에는 대중 경제의존도를, 중국에는 대미 안보의존을 각각 이야기하며 미중 양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여전히 대미 외교를 중요시하는 이들은 미국을 섭섭하게 하면 북한에 공격당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중국을 섭섭하게 하면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어떤 수단이 있어야 등거리 외교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북한을 보십시오. 북한이 예전에 특별한 수단이 있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한 것이 아닙니다. 외교는 지혜로 하는 것입니다. 힘이 없는 나라는 약자만이 가진 엄포와 배짱이 있습니다. 우리도 미중 간에 갈등이 일어나면 이를 중재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이 잘 협조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북한 때문이며 중국도 미국을 압박하는 데 북한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비록 미중에 비해 약하지만 약자가 가진 엄포를 활용해 안보 면에서 유리한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지도자가 판을 크게 보고 멀리 내다보는 식으로 정세를 주도해나가야 합니다.

-판을 넓혀보죠. 북일 간 납치자 문제 협상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북일 간 납치자 문제는 찻잔 속의 태풍 정도입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보통 국가가 되기를 원하는데 관련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지지가 필요합니다. 북일 협력은 결국 일본 내부 정치의 일환으로 봐야 하며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29~30대 통일부 장관 역임… 개성공단 등 주도적 역할
남북회담 99회 직접 관여


기자명

정세현 전 장관은 29~30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연이어 장관을 맡았으며 통일부 출신 첫 통일부 장관이기도 하다.

정 전 장관이 통일부 장관으로 재임했던 2002~2004년은 남북대화가 95차례나 이어질 정도로 회담이 잦았다. 1971년 이후 남북 간 체결된 143개 합의 가운데 73개가 정 전 장관의 재임 기간에 이뤄질 정도로 대북정책을 잘 이끌어갔다는 평이다. 개성공단 건설과 경의선 및 동해선 개통 등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1971년 이후 열린 남북회담 중 99회의 회담에 직접 관여하는 등 북한을 가장 잘 아는 인사로 평가된다.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후 국내 최대 통일운동 단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으로 4년간 일했으며 이화여대와 경남대 석좌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2010년부터 원광대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약력

△1945년 만주 △1967년 서울대 외교학과 △1977년 통일부 연구관 △1998년 통일부 차관 △2002년 29대 통일부 장관 △2003년 30대 통일부 장관 △2005년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2010년 원광대 총장

◇주요저서

'정세현의 통일토크' '광장에서 길을 묻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한국 통일 문제의 현주소' 등



/대담=안의식 정치부장 miracle@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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