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15대 임금을 지냈던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때 태자의 신분으로 백성들과 동고동락했고, 집권해서는 가난한 농민의 부담을 크게 줄여주었다.
특히 명(明)나라와 후금(後金) 사이에서 사대주의에서 벗어난 능란한 외교술을 펼쳐 나라에 평안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의 민본주의적 개혁과 실리외교정책은 당시 서인으로 대표되던 기득권ㆍ보수층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서인세력은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쫓아내고 말았다.
권력과 사랑의 쟁취를 위해 계모인 인목대비와 갈등하고, 끝내 형 임해군과 배다른 동생 영창대군을 죽인 광해군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가 펼친 뛰어난 외교술은 후세에 충분한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광해군이 집권하던 17세기초(1618년) 만주를 기반으로 한 여진족(후금)의 세력이 날로 커지면서 명나라를 위협, 중국대륙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명은 조선에 후금을 칠 것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광해군은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가 문신인 강홍립에게 1만여명의 군사를 주어 형식적인 전쟁을 치르게 했다.
조명(朝明)연합군은 후금에게 패했고 강홍립은 광해군의 지시대로 순순히 후금에 투항했다. 명과 후금사이에서 이른바 '등거리 외교'를 펼쳤던 것이다.
이후 반정파가 광해군을 쫓아내면서 조선의 외교정책은 바뀌었다.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친명배금(親明排金)정책을 내세워 '전통적 우방국'인 명을 받들었다.
그렇다고 조선이 명나라로부터 진정한 우방국 대우를 받았던 것도 아니다.
죽천 이덕형을 대표로 한 사신(使臣)들이 인조 즉위를 승인받기 위해 명에 갔다가 온 뒤에 쓴 죽천행록(竹泉行錄)에는 약소국의 비애가 그대로 담겨 있다.
"공이 또 길가에 엎드려 손을 묶어 부비니 '내일 도찰원으로 오라' 하거늘 공이 무수히 사례하시고 . 곡절 끝에 관청에 나가 고위관료들을 만나게 됐으나 관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죽천은 섬돌을 붙들고 내쫓기지 않으려 울며 애원한다."
광해군의 등거리 외교를 경험한 명나라는 조선이 다시 요동 정벌에 참여하여 후금을 물리칠 경우에만 인조 즉위를 승인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덕형으로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중국 관리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고 무작정 매달리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인조는 뇌물 공세와 애원 끝에 명나라로부터 즉위승인을 받았지만 실패한 외교정책으로 인해 이후 더욱 굴욕적인 길을 걷게 된다. 후금과의 두 차례 전란에 이어 적장에게 절을 하는 '삼전도의 굴복'과 세자의 볼모 등 치욕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사실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가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현 상황이 17세기 초엽 때와 상당히 유사하다.
핵개발 문제를 놓고 북한과 미국이 대립하고 있다. 적대국인 동시에 한민족 국가인 북한과 전통적 우방국인 미국 사이에서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물론 북한을 후금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고, 미국을 명나라와 같은 수준으로 인식할 수는 없다. 특히 한쪽 당사자가 이민족이 아닌 한민족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일에 대처함에 있어 더욱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당장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통일이라는 보다 높은 차원에서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북한 핵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하고 이를 위해 특사를 미국에 파견, 정책대안을 마련한뒤 이를 북한에 제시하는 '중재외교'를 추진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재란 당사자들이 부탁할 때 가능한 것이지, 당사자들은 서로 딴 생각을 품고 있는데 공연히 어설프게 나서다간 양쪽으로부터 다 욕을 먹게 될 수도 있다.
자고로 협상은 먼저 초조해 하는 쪽이 지게 마련이다. 후금과 명은 직접 전쟁을 치르는 당사자였지만 조선은 한발 물러서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초조했다.
광해군의 등거리외교도 그래서 가능했다. 하지만 인조는 달랐다. 반정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명의 승낙을 빨리 받아야 했다. 오히려 조선이 더 초조하게 된 것이다.
북한이 초강경 자세로 나오고 미국이 2개의 전쟁 가능성을 언급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설프게 중재에 나섰다간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의 목소리를 낼 기회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盧당선자는 좀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아울러 만약 盧당선자의 특사가 미국에 간다면 그 전에 죽천행록(竹泉行錄)을 반드시 읽어보기 바란다.
김준수<정보과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