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천년 古都, 진시황의 위용·양귀비의 사랑을 품다

중국 시안<br>옛 실크로드의 출발점… 현재는 서부개발 중심지로<br>하나하나 예술품인 병마용… 양귀비가 목욕했던 화청지<br>3,000개 넘는 문화 유적지… 흙빛 도시에 생동감 불어넣어

베이징 톈안먼 광장보다 더 넓은 시안의 당나라 대명궁(大明宮) 유적지는 지난해 10월 '대명궁 국가유적지공원' 으로 새단장해 관광명소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진시황릉의 병마용갱(위부터)' 은 6,000 이상의 병사들이 제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 있어 그 정교함에 놀라게 된다.

양귀비가 목욕을 했던 '화청지'.

한나라 4대 왕인 한경제 부부가 합장된 '한양릉'까지 중국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구름이 짙게 낀 4월의 시안(西安)은 탁한 흑백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황사의 발원지인 네이멍구 자치구 남쪽에 위치해 맑은 하늘을 보기 어렵다는 이 도시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축물 공사의 뿌연 먼지와 연평균 강수량이 600㎜에 불과한 건조한 공기에 파묻혀 있었다. 하지만 시안은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13개 국가가 수도로 삼았던 천혜의 요새다. 아테네ㆍ로마ㆍ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로도 꼽히고 동서양 문물이 오갔던 실크로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시안 시내는 명나라 때 건설돼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는 총길이 14㎞의 장안성벽에 싸여 있고 곳곳에 있는 유적들은 고유한 색깔로 흙빛 도시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시안은 한반도 43배 크기의 산시성(陝西省) 성도이자 중국이 주력하고 있는 서부개발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땅 속에는 '파기만 하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직 발굴되지 못한 유물이 가득하고 땅 위에는 정보기술(IT), 태양광 전지, 반도체 등 신흥산업이 빠르게 발전해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예술품 자체인 '진시황 병마용'=주나라부터 진나라ㆍ당나라에 이르기까지 1,000여년간 도읍의 위용을 자랑했던 시안에 남은 황제의 무덤은 자그마치 72개나 된다. 멀리 보이는 언덕은 대부분 황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 가운데 가장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아무래도 건축에만 38년이 걸렸다는 진시황제의 능이지만 중국 정부의 방침으로 공개되지 않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상태다. 대신 세계 8대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진시황병마용박물관이 관광객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병마용은 국왕이 죽으면 병사를 순장하는 풍습으로 국력이 쇠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병마용이 든 갱에는 병사와 본떠 만든 도용들과 말ㆍ마차 등이 매장돼 있다. 병마용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과 입지 않은 병사들로 구분돼 있고 병사들의 표정은 제각각 달라 하나하나가 실존인물이었던 듯한 착각을 준다. 제작 당시에는 채색돼 있었지만 발굴과정에서 빛이 바래 지금은 색이 남아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가로 230m, 세로 62m, 깊이 5m에 이르는 병마용 1호갱에는 회색 병사들이 가득하다. 병마용은 지난 1974년 중국 시안 외각에서 우물을 파던 농부 세 명 때문에 우연히 발굴됐다. 본격적인 착수작업을 거친 중국 정부는 이것이 진시황릉에 함께 묻힌 병마용 갱임을 발표했고 지금까지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병마용 갱은 발견시간에 따라 1호, 2호, 3호 등의 숫자로 지정됐는데 1호 갱에는 6,000여개의 병사용이 매장돼 있고 가장 최근 발굴된 3번 갱에는 장군용이 발굴돼 '지휘소'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남자들의 평균 신장은 158㎝로 알려졌으나 1호 갱 병사들의 평균 신장은 173㎝, 3호 갱의 평균 신장은 180㎝에 달해 신장으로도 계급의 구분을 보여준다. ◇양귀비가 하루에 여섯 번씩 목욕했던 '화청지'=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는 양귀비(楊貴妃)는 알려진 이미지와 다르게 '액취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가 하루에 여섯 번씩 목욕을 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물이 귀한 시안에서 하루 여섯 번 목욕을 했다는 것은 양귀비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이기도 하다. 시안에서 동쪽으로 35㎞ 정도 달리면 양귀비가 목욕을 했던 바로 그곳 '화청지(華淸池)'가 나온다. 아직까지도 43도의 온천수가 나오는 이곳은 양귀비와 당현종(唐玄宗)이 사랑을 맹세했던 장소기도 하다. 당현종은 양귀비를 위해 궁전식 목욕탕을 만들어 '화청궁'이라 이름 지었다. 화청궁 안에는 현종과 양귀비가 함께 목욕했던 '연화탕', 양귀비가 머리를 말리던 '비하각' 등이 있다. 화청지에는 목욕탕만도 100개가 넘어 수뱅 명이 동시에 목욕을 했다고 전해진다. 낮에는 고즈넉한 온천의 모습을 간직한 화청지는 밤이 되면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재연한 공연 '장한가(長恨歌ㆍ끝없는 슬픔의 노래)'의 화려한 무대로 변신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장한가를 중국의 명감독 장이모우(張藝謨)가 연출했는데 주변의 자연을 모두 공연의 배경으로 만들어 관객을 압도한다. 특히 화청궁 뒤를 감싸고 있는 여산(廬山)에 조명을 촘촘히 달아 산을 밤하늘로 만들어버린 장면에서는 관객들의 탄성이 동시에 터진다. 배우들은 대사 없이 춤과 동작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중국어 내레이션과 장중한 음악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외국인을 위한 자막이나 통역은 없지만 양귀비와 당현종의 사랑 이야기를 미리 알고 가면 이해하는 데 무리는 없다. 입장료는 218~988위안이며 공연시간은 1시간10분이다. 40여개의 국보급 유물과 3,000개 이상의 문화재 관광지를 보유한 시안은 진시황병마용과 화청지 외에도 한나라의 네 번째 황제이자 한무제의 아버지 한경제 유기와 왕후 동영의 합장릉인 '한양릉', 중국에 처음 세워진 현대식 국가박물관인 '산시성역사박물관', 지난해 10월 개장한 '대명궁 국가유적지공원'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아직도 발굴 중인 유적이 많아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고 박물관에는 단체여행객들을 인솔하는 가이드의 소란스러운 안내가 귀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이런 모습도 역사의 흔적을 현재로 불러오는 데 한창인 시안에서만 겪을 수 있는 경험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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