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지난해 이래 새끼곰 수준으로 인식하던 뉴욕 증시의 베어 마켓(bear market)이 사실은 나라 경제를 위협하는 거대한 성난 곰이란 걸 알게 된 것은 불과 10주 전이다.문제는 뒤늦게 인식된 이 상황이 아직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곰 출현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난 29년 대공황이나 일본의 장기 침체, 그에 앞선 금융위기를 되새겨보기 시작한 현 단계는, 대형 금융 위기를 앞두고 이제야 서막이 끝 나가는 단계다.
워싱턴 정가는 과거의 불운을 답습하는 양상이다. 부시 행정부는 70년 전 후버 정권의 비효율을 되풀이하고 있으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마땅한 경기 부양 수단을 찾지 못한 채 90년대 이후의 일본처럼 미국이 10년간의 장기 침체에 빠져들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미국은 3단계로 이뤄지는 금융 위기의 두번째 단계다. 지난 80년~90년대를 거쳐 금융과 보험, 부동산 부문은 현저한 성장세를 보이며 국내총생산(GDP) 규모 가운데서 제조 부문을 앞질렀다.
지난 2000년과 2001년의 금융위기 첫 단계가 거품 경기에 의한 것이었다면 올해 직면한 2단계 위기는 지난 20년간의 급팽창 이후의 금융시장과 기관, 그리고 가치 평가의 성실성과 관련된 것이다.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은 기업들이 분기별 실적을 지상 과제로 삼도록 압박을 가해왔고, 잘못된 주식 분석과 등급 책정으로 투자자들을 오도했다.
많은 회계법인들이 높은 컨설팅 수수료를 받는 대가로 기업들의 회계부정에 맞장구를 쳤고, 대형 은행들도 엔론 등의 재무 사기행각을 보조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왜곡된 금융화는 엔론과 뒤이은 월드컴의 사상 최대 규모 파산을 초래했지만, 대규모의 자산 붕괴가 미 경제와 소비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가늠할 선례는 없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지난 29년 공황 당시와의 직접 비교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2000년부터 올해까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자산손실액 비중은 지난 29년 이후 같은 기간중에 비해 다소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이 실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 상황에서, 금융위기 3단계는 투자 위축과 소비 냉각이라는 부정적인 부의 효과가 결합되는 형태로 나타나면서 증시를 한층 추락시키고 올 후반 또는 내년 초까지도 경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금융산업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일부에선 미 경제가 지난해의 짧은 침체에서 벗어나 강한 회복세를 보인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경제와 증시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금까지 회복세를 견인한 9ㆍ11사태 후 부양책의 효과도 사그러들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 경제를 지난 29년 공황기와 90년대 일본 경제와 비교하는데도 반대하고 있다. 물론 과거와의 유사성에 대해선 에누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2000년 이래의 미 증시 붕괴와 경제 불안이 적어도 지난 29~32년 당시 미국 상황이나 12년래 지속되는 일본과 흡사한 양상을 보이게 될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정치도 마찬가지로 불확실하다. 부시 행정부는 기업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과 연방정부가 새로운 규정 시행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20년대의 공화당과 닮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후버 대통령과 달리 부시 대통령 및 딕 체니 부통령은 모두 전 최고경영자(CEO)들로 부정행위와 편파 혐의를 받을 여지가 많으며, 이는 국가 기관들에 대한 신뢰 약화와 대중의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다.
최근 3년간의 증시 침체가 실물 경제로 확산돼 또 다른 침체를 야기한다면 부시 대통령-기업간 연결 고리를 의심하는 추세는 더욱 강해져 의회가 민주당에 의해 장악되는 것은 물론 개인적인 신뢰 상실로 인해 대통령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는 의회가 두동강 나는 바람에 공화당 정부가 교착상태에 빠졌던 지난 31~32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내년과 내후년 경제문제 해소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경제사(史)는 당장 다음 주나 다음 달에 어떤 일이 닥칠지는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폭락 장세 뒤에 단기적인 주가 상승을 예측하기는 쉽다.
하지만 6개월에서 1년 후, 침체 양상은 소비자들과 그동안 오만에 빠졌던 금융업계로 확산될 공산이 크다.
/케빈 필립스(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