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1월12일] 美후생부 DDT 사용 금지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 머릿니가 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여겨졌던 이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는 추억의 기생충이다. 가난했던 시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대개는 이를 달고 살았다. 아이의 머리 속에서 기생하던 이는 어머니의 양 엄지손톱 사이에서 최후를 맞았다. 군대간 장병들은 햇살 좋은 날이면 웃통을 벗고 겨드랑이며 머리 속에 숨어 있는 이를 찾아내 가려움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하곤 했다. 일일이 손으로 잡기 어려울 정도로 이가 많을 때는 머리든 몸이든 DDT를 뿌려 대량학살을 시도했다. 어른들은 이를 ‘띠띠띠’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뜻도 정확히 모르고 그냥 띠띠띠로 따라 부르다 나중에서야 그게 DDT라는 것을 알았다. DDT는 유기합성 살충제의 시초로 1874년 O 자이들러가 최초로 합성하고, 1939년 스위스 화학자 폴 뮐러가 살충효과를 확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처음으로 실용화, 전후 세계 각국에서 농업용 또는 위생해충 방제용으로 널리 사용됐다. 무색의 결정으로 곤충의 표피에 붙어 기문이나 환절막을 통해 체내에 흡수, 중추신경을 마비시킴으로써 곤충을 죽인다. 6ㆍ25전쟁 당시 미국제 DDT는 우리나라 전역에 공급돼 몸에 기생하는 이를 퇴치하는 데 엄청난 공을 세웠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DDT 덕분에 발진티푸스·말라리아·페스트 같은 전염병에서 목숨을 구한 사람이 2,000만명을 넘는다. 그러나 미국 보건후생부는 1969년 11월12일 DDT 사용을 금지했다. 해충에 잘 흡수되는 반면 분해가 잘 되지 않아 논밭에 뿌린 DDT가 하천과 호수에 사는 물고기는 물론 사람 체내에서도 검출됐기 때문이었다. /박민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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