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색 국면이 5개월간 이어지던 남북관계가 이달 들어 해빙 무드에 들어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일대박 현실화에 힘을 쏟아야 할 남측의 사정과 외교적 고립 탈피에 힘써야 하는 북측의 입장이 잘 맞아떨어질 경우 본격적인 해빙 무드가 조성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선 대화 무드 조성에 적극적인 쪽은 우리 측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11일 오전 북측에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할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고 직후 1,330만달러 규모의 대북지원안을 발표했다. 12일에는 통일부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남북 공동기도회 개최 관련 방북 신청을 승인하는 등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 애쓰고 있다.
남남(南南)갈등의 소지가 있는 금강산 관광 재개나 5·24 대북조치 해제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어떤 의제든 논의할 수 있다며 북측에 공을 넘겼다.
이와 관련, 4대 국정 기조에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담을 정도로 적극적인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3월 드레스덴 선언 이후 통일정책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었지만 세월호 참사로 추동력을 잃었다. 이후 6·4 지방선거 무승부와 7·30 재보궐선거 압승으로 국정 장악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만큼 8·15 경축사가 통일정책의 전환점을 마련할 최적기라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3년 반 정도 남은 상황이라 장기집권이 예상되는 김정은 정권에 비해 시간도 없는 편이다.
미중 간의 패권다툼이 심화되고 북한이 일본 및 러시아와의 교류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이번 제안의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해 미중 양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남북회담이라는 정공법이 전략적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과 중국의 신흥대국론 충돌에서 한국이 동북아의 주요국이 아닌 주변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도 이 같은 대북 제안으로 남북관계를 회복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남측이 먼저 손을 내밀기는 했지만 관계 개선에 더욱 목말라하는 쪽은 북한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한미연합군사훈련 등을 핑계로 위협을 이어가지만 최근 박 대통령의 실명 대신 '남조선 집권자'라는 표현을 쓰는 등 수위를 조절 중이다. 언제든 우리 측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드레스덴 선언을 '흡수통일 논리'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것 또한 경제력이 남측의 10분의1에도 못 미치는 북한의 불안 때문으로 해석 가능하다.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남북교류 활성화에 목말라하는 상황이다.
현재 한반도 주변국과의 관계도 북측에 적잖은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북한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라크 내전 때문에 북한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다만 남북관계가 조그마한 변수에도 종종 출렁거렸던 만큼 아직 상황을 낙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반도 해빙 무드가 이어지려면 북측의 호응이 중요한데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등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 여부가 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