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위조화폐ㆍ수표


콩과 슈퍼노트. 둘은 위조화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문화인류학자 잭 웨더포드는 '돈 상식사전'에서 세계최초의 위조화폐로 진흙 카카오콩을 지목한다. 고대 아즈텍인들이 진짜 화폐인 카카오콩과 정교한 진흙 모형과 섞어 눈을 속였다는 것이다. 현대판 진흙 콩격인 슈퍼노트도 정교함이 생명이다. 초고성능 감식기로도 감별이 어려울 정도다.


△진흙 콩 같은 가짜 돈은 차라리 애교에 속할지도 모른다. 힘이 있을수록 대놓고 위조화폐를 통용시켰으니까.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사악한 찬탈자로 묘사되는 로마의 코모두스 황제는 검투사로도 유명했지만 금화 함량을 낮추는 화폐 타락의 시초로도 꼽힌다. 기원후 3세기께 로마금화는 순도 5%까지 떨어지며 경제를 흔들었다. 근대 직전까지 유럽의 국왕들은 주화 함량을 경쟁적으로 속였다. 치부를 위해서다. 일본도 18세기 초 조선인삼을 수입하며 은의 순도를 속였다가 조ㆍ일(朝ㆍ日) 무역분쟁을 야기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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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상인과 민초도 화폐에 손을 댔다. 금화나 은화를 자루에 넣은 후 흔들어 떨어지는 가루를 챙기고 때때로 모서리를 갉았다. 온전한 모습의 옛 주화가 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늘날 동전의 오톨도톨한 테두리(mill)도 1696년 영국이 은화를 깎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법령의 유산이다. 국가와 개인을 따질 것 없이 모두가 화폐타락에 나선 나라도 있다. 바로 조선이다. 국가는 당백전과 당오전, 백동화를 남발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유력가문은 사주전(私鑄錢)을 주조하며 외국대사관까지 위폐주조에 나섰던 조선 후기의 혼란은 망국으로 이어졌다.

△은행의 현직 간부가 낀 100억대 위조수표범 일당의 꼬투리가 경찰에 잡혔다. 옛 조선의 법률로는 사형감이지만 형량은 미지수다. '디펜딩 더 언디펜더블'의 저자 월터 블록 미료올라대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대부분의 현대 국가는 위폐범을 처벌할 권리가 없다. 국가야말로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범인이기 때문이란다. 블록의 견해는 논란거리지만 한가지만큼은 분명하다. 옛 기준으론 국가에 의해 강요되는 종이일 뿐인 불태환지폐의 미래가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권홍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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