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슈 인사이드] 근절되지 않는 촌지 문화

갈수록 고액화·지능화… "교사-학부모 신뢰 회복이 해결책"<br>일부 교사 윤리의식 실종에 학부모들 이기심도 한몫<br>적발땐 금액 관계없이 무조건 퇴출등 일벌백계 필요<br>"교사·학부모 간 편지·이메일 활용 소통도 확대해야"


#지난 달 초 경기도 분당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명품 핸드백 등 수천만원 상당의 촌지를 받은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이 여교사는 조사 결과 2008년 3월부터 2년여에 걸쳐 자신이 담임을 맡은 학급의 학부모 12명으로부터 120만원 상당의 루이비통 가방을 비롯해 20여차례에 걸쳐 1,000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달 초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의 집주소를 학부모들에게 알려줘 해당 학교가 강남교육지원청으로부터 시정 조치를 받았다. 촌지 단속이 심해지면서 주위의 이목을 끄는 학교 보다는 집으로 택배나 퀵서비스를 이용해 선물을 보내는 사례가 있어 교사의 집주소를 '대외비'수준으로 관리하라는 지침을 어긴 것이다. 최근 들어 교육계 내부의 자정 노력과 당국의 단속 강화로 촌지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일부 학부모와 교사의 촌지 수수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앞서 두 사례는 학교 현장의 촌지 수수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점점 고액화, 지능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도 신학기 초나 스승의 날, 명절 때만 되면 학교 현장은 촌지 때문에 홍역을 치른다. 교육당국은 올 한해 내내 감찰 활동을 벌여 촌지를 뿌리뽑겠다고 최근 특별감찰팀을 꾸렸다. 전문가들은 촌지 문화를 없애기 위해서는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교사와 학부모 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고 지적한다. ◇학부모 이기심과 교사 윤리의식 부족이 빚어낸 합작품=촌지 문화가 근절되지 않는 책임은 교사와 학부모 모두에 있다. 먼저 '내 자식 잘 봐 달라'는 부모들의 이기심이다. 먼저 성의를 보였으니 다른 아이에 비해 자신의 자녀에 대해 신경을 더 써달라는 부모의 요구에 대해 거부했으면 모를까 촌지를 받았다면 이를 모른체 할 교사는 드물다. 부모 입장에서는 대가를 바라고 뇌물을 준 것이고 교사는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할 처지인 셈이다. 그러나 촌지는 대부분 교사쪽에서 먼저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유형은 다양하다. 문자나 전화 등으로 학교에 방문할 것을 은근히 요구하는 눈치형, 지속적으로 아이를 꾸중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구박형, 눈에 띄는 차별로 촌지를 저절로 주게끔 하는 차별형 등이다. 나이 많은 초등학교 교사일수록 촌지를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학부모들의 전언이다. 촌지의 효과에 대한 학부모들의 믿음은 굳건하다. 촌지를 받은 전후로 교사의 태도가 돌변하기 때문이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대표는 "반대급부가 없으면 학부모들이 촌지를 줄 이유가 없다"면서 "일부이긴 하지만 오랜 관행과 타성에 젖은 교사들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촌지 문화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적발시 교단 퇴출 등 '일벌백계'처벌 필요=지금까지 촌지를 받았다가 적발된 교사들은 금액이나 횟수, 비위의 경중 등에 따라 처벌을 받았다. 대체적으로 금액이 100만원 미만이면 주의나 경고ㆍ견책 등 경징계를, 100만원 이상이면 정직이나 파면ㆍ해임 등 중징계했다. 지난해 추석 때 3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견책을 당했고, 분당의 '루이비통 촌지 여교사'는 해당 교육지원청으로부터 파면ㆍ해임 의결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교육비리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촌지 수수에 대해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교육청은 같은 해 스승의 날을 전후해 학부모에게서 3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초등학교 교사에 대해 경징계(견책ㆍ감봉)했다. 그동안 상품권 수수에 대해서는 주의나 경고를 한 것에 비하면 징계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촌지를 적발할 경우 금액의 크기에 상관없이 무조건 퇴출시키는 등 '일벌백계'식의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촌지는 당사자들간에 은밀히 건네지는 속성 탓에 적발이 어려운 만큼 예방주사 효과 차원에서 한번 발각되면 다시는 교단에 설 수 없을 정도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촌지를 건넨 학부모를 함께 처벌하는'쌍벌제'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병원 리베이트처럼 촌지도 반대급부를 원하며 건네는 뇌물인만큼 학부모도 처벌해야 근절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쌍벌제는 지난 2006년 도입이 논의되다가 '교사를 잠재적인 범죄자가 아니다'라는 교원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바 있다. ◇교사-학부모 신뢰 회복 위한 소통 강화해야=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학교 촌지에 대한 국민의식실태를 조사할 결과에 따르면 과거 2~3년 전에 비해 촌지수수 관행이 '줄었다'는 응답이 56.0%로, '늘었다(5.3%)'보다 크게 높았다. '달라진 것이 없다(38.7%)'도 꽤 됐으나 촌지 문화가 크게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이는 촌지 수수 행위에 대한 감시와 단속이 강화된 데다 학부모와 교사들의 의식이 높아진 탓이다. 박부회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상담실장은 "교사도 촌지가 부담스럽고 학부모도 자녀를 잘봐달라고 부탁하는데 도덕적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에 개인 간 촌지 수수 행위는 많이 줄었다"면서 "그러나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형태의 촌지인 불법찬조금이 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촌지 문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학부모 간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최 대표는 "촌지 때문에 학부모를 학교에 오지도 못하게 하는데 교사-학부모 간 대화와 소통이 없다 보니 오해를 더욱 키우고 이를 촌지로 해결하려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면서 "학교가 문을 열고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그동안 스승의 날 휴업 등 촌지 문화 근절을 위해 수세적이고 네거티브 방식을 취했는데 올해는 공세적ㆍ적극적인 방식으로 대처할 계획"이라면서 "교사-학부모 간 신뢰 회복을 위해 편지ㆍ이메일ㆍ문자 보내기와 건전한 가정방문 운동을 전개하는 등 교사들이 앞장 서서 촌지를 추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