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세일공화국

생활산업부 권구찬차장

요즘 제값 주고 물건을 사면 바보 취급받는 세상이다. 조간 신문에 껴서 들어오는 백화점ㆍ할인점의 주말 전단은 온통 세일ㆍ떨이 행사안내로 도배돼 있다. 동네 중국집이 자장면을 절반 값에 팔고 구멍가게까지 할인경쟁에 내몰리는 소비불황에 유통1번지인 백화점과 할인점으로서는 견딜 재간이 없는 노릇이다. 불황의 끝이 보이지 않자 유통업계의 세일전쟁이 극에 달하고 있다. 30~40% 할인은 기본이고 미끼 상품전과 덤주기 행사는 약방의 감초다. 해외수입 명품까지 세일 도중에 가격을 더 내려 불황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할인점도 백화점의 전유물인 정기세일에 나서는 마당이다. 이러다 보니 세일 용어가 낯 뜨거울 지경이다. ‘파격가전’과 ‘초특가전’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거창한 수식어를 동원한다. ‘대한민국 초특가전’ ‘상상초월 파격가전’ ‘초특급파워 특가전’ 등과 같은 식이다. ‘물가안정’과 ‘불황극복’이라는 수식어도 IMF 이후 다시 등장했다. 매일 저가(Everyday low price)를 모토로 삼는 할인점이 돌리는 주말 전단은 허위과장 광고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변칙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를테면 ‘대한민국 최저가’는 큰 글씨로 쓰고 그 옆에 ‘도전’을 보일락말락 살짝 걸치는 식이다. 한정판매를 ‘줄서서 기다리는 기획전’으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원가이하 상품전’도 등장해 ‘노마진ㆍ역마진’ 표현을 금지시킨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치를 무색하게 한다. 유통업계는 정상매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미끼 상품전이나 떨이ㆍ이월 상품전만 골라 다니는 불황기 소비패턴 때문에 좀더 자극적이고 화끈한 표현이 불가피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어떤 백화점 매장이, 어느 할인점 코너가 더 싸게 파는지 헷갈릴 따름이다. 헐값에 판다는데 정말 싸게 산 것인지, 이번 세일 때가 아니면 저렴하게 사지 못하는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일경쟁이 심해지면 소비자는 좀더 낮은 가격에 지갑을 여는 ‘항생제효과’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진 것은 불경기 탓이 분명하지만 얇아진 지갑만 갖고 오게 한 것은 유통업계 자신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잦은 세일행사로 인한 소비자의 불신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소비자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세일 용어부터 자정(自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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