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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드라이버 샷 평균거리가 14등이라고 주위에서 일러줘서 알았어요. 교포인 미셸 위와 양희영을 빼면 한국 선수로는 최고 장타라네요. '노장'인데 거리가 나는 건 좋은 일이지요. '힘이 없어 못하겠다'고 농담하면 동생들이 '언니는 쉰 살 넘어도 300야드 때릴 것 같다'면서 웃어요."
박세리(35∙KDB산은금융그룹)에게 지난해는 자신에 대한 재조명이 확실하게 이뤄진 해로 기억될 듯싶다. LPGA 투어의 한국(계) 선수들이 100승을 돌파하면서 핵심 주역인 박세리의 '하얀 발'이 13년 만에 새삼 회자되면서 '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LPGA 투어가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 없었던 1998년. 박세리는 그야말로 슈퍼스타처럼 등장했다. 그해 5월 LPGA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미국 데뷔 첫해에 메이저대회 2승을 포함해 4승을 올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특히 연장 사투 끝에 거둔 7월 US 여자오픈 우승은 한국 골프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였다. 연장 18번 홀에서 양말을 벗고 하얀 맨발로 물에 들어가 볼을 쳐낸 장면은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줬다. 지난 연말 잠시 짬을 내 입국했던 박세리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지난해 한국 낭자군의 통산 100승 달성 때문에 크게 주목을 받았는데.
▦1승도, 10승도 어렵지만 100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특별한 것 같아요. 그래서 선수들이 부담을 느껴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죠. 100승 가운데 내 승수가 25승 포함됐고 후배들이 나 때문에 골프를 시작해 점점 더 많이 도전하면서 승수가 늘어났다는 말을 들으면 대한민국의 딸로서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100승째를 본인이 직접 채우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나.
▦솔직히 기왕이면 내가 했으면 했어요. 또 하는 줄 알기도 했었죠. (박세리는 한국군단이 99승에서 머물던 지난해 7월 말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맹타를 치며 선두권을 달렸다.) 마음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후배(최나연)가 100승째를 거두니까 아쉬움보다는 드디어 채웠구나 하는 기쁨이 훨씬 컸습니다.
-세계랭킹 1위 청야니(23∙대만)가 지난해 LPGA 투어 7승을 거두는 등 기세를 올리고 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청야니와 같은 나이로 맞붙는다면.
▦청야니가 강하고 재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만 선수가 한국 선수들보다 드물다 보니 더 돋보이는 측면이 많다고 생각해요. 최전성기 때 만났다면…. 글쎄요. 아마 제가 위였을 걸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아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 로라 데이비스 등 정상급의 층이 두터워 시즌 5승 이상은 정말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로레나 오초아 때만 해도 경쟁이 그때만큼 치열하지는 않았지요.
박세리는 1998년과 1999년 4승씩, 2002년과 2003년 5승씩을 거뒀다.
-새로운 스폰서도 만났고 2011년은 여러모로 좋았던 해로 기억되겠다.
▦저는 인복이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해 KDB산은금융그룹과 메인 스폰서 계약을 맺었는데 원래 '무적(無籍)'은 아니었어요.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님의 후원을 받으며 '온다 도로(Onda d'0ro)' 모자를 쓰고 있었지요. 이 회장님은 어릴 때부터 개인적으로 후원해오신 큰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제가 한국 골프의 개척자라면 이 회장님은 한국 와인 개척자라고 할 수 있죠.
온다 도로는 운산그룹 주력사인 동아원㈜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100% 투자해 설립한 다나 에스테이트가 생산하는 와인이다. 계속 박세리의 서브 스폰서로 후원하고 있다.
-KDB산은금융그룹과는 어떻게 계약을 맺게 됐는지.
▦강만수 KDB 회장님과는 계약식 직전에 처음 만났는데 잠시 대화하면서 열의가 굉장하시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요즘 골프 잘하는 젊은 후배들 많잖아요. 그런데 회장님은 생각이 달랐어요. 현재의 모습을 떠나서 지금 우리나라 골프를 있게 한 장본인으로 제 가치를 알아주시고 선뜻 선택하신 거죠. 대한민국의 딸로 인정을 해주셨다는 생각,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하는 감동에 계약식 때는 눈물이 났어요.
-강 회장이 그랜드슬램을 이루는 데 불편이 없도록 돕겠다고 했다던데.
그랜드슬램은 여자프로골프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한 번 이상 우승하는 것을 말한다. 박세리는 1998년 LPGA 챔피언십과 US 여자오픈, 2001년 브리티시 여자오픈 등 메이저대회 통산 5승을 거뒀으나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컵만 들어올리지 못했다.
▦제가 더 하고 싶죠. 해마다 준비하면서 15년을 나갔는데. 회장님이 "꼭 해야지, 해야지"하셔서 부담감이 없지 않지만 마음이 더 든든한 건 분명해요. 왜 안 되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모든 기록을 달성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기 때문에 선수 그만두기 전까지는 그랜드슬램 꼭 이뤄야죠. 2012년에는 느낌이 좋아요. 미국 진출한 뒤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서 겨울을 보내게 돼 힘도 나요. 특히 아버지가 스윙을 봐주시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좋아질 거예요. 지난 시즌 후반 아버지의 '족집게 레슨'으로 감이 확 좋아졌거든요.
-한동안 슬럼프를 겪기도 했는데 어떻게 극복했나.
▦2005년과 2006년 무렵에는 원인 모를 슬럼프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다시 재기를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원인을 모르니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답도 없었습니다. 똑같은 플레이 방법과 훈련, 심지어 모든 걸 더 체계적으로 했는데도 부진은 깊어졌어요. 하지만 돌아보면 아픈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맨발 샷'의 투혼으로 위기를 벗어났던 박세리는 2007년 LPGA 챔피언십 우승으로 슬럼프를 빠져나오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아픔을 겪었던 박세리는 "'여유'가 슬럼프 탈출의 비결임을 깨달았다"면서 자신만의 '배터리론'을 폈다.
"슬럼프 속에서 문득 처음으로 저를 돌아보게 됐어요. '벌써 이만큼 해놓았구나. 20승 넘게 올린 것도 모르도록 달려만 왔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내가 무엇 때문에 달려왔나를 모르고 있었다'는 걸 그제서야 느낀 거예요. 무릎을 탁 쳤죠. '아, 방전된 거구나.' 기계도 쉴 시간을 주고 충전을 해야 고장이 나지 않잖아요. 전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거죠. 사용만 하고 급할 때 잠깐 충전하고 또 쓰고…. 방전된 줄도 모르고 고장 원인만 찾으려 했던 것 같아요."
몸소 체득하게 된 롱런 비결을 후배들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타이거 우즈나 소렌스탐이 쉬는 게 최고의 자기 관리라고 말하지만 설마 했다"는 박세리는 "쉬면 뒤처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연습에 끌려 다녔지만 이제는 할 때는 확실히 하고 쉴 때는 확실히 쉬는 게 열쇠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후배들은 기량 면에서 조언해줄 게 없을 만큼 뛰어나지만 여유가 없어서 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그는 "우리 정서에 그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골프가 좋아서 하고 있다는 생각, 다른 생활도 즐겨 가면서 하는 게 정답이라는 교훈을 하루라도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박세리에 대해 남들이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강한 이미지가 많지만 알고 보면 '친절한 세리씨'에요. 집에 있으면 청소하고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죠. 요즘에는 TV프로그램 '1박2일'에 빠졌는데 인터넷으로 거기 나온 음식 요리법을 검색하고 이미나∙이정연 등 집(플로리다주 올랜도) 근처 후배들 불러 같이 해먹는답니다. 그래도 운동하는 동안은 강한 이미지가 좋아요. 여성스럽다는 말은 어딘지 약해 보인다는 의미로 들리니까요.
박세리는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2007년 9월 세계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던 때를 들었다. 명예의 전당에는 종목별로 그 나라 선수가 최초로 가입할 때에만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 세리머니를 열어주는데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코끝 찡한 감동이 밀려왔다고 한다.
3년 내에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은퇴하는 시나리오를 써놓은 박세리는 은퇴 후 계획까지 야무지게 준비하고 있다. "대한민국 골프는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지만 어떤 골프 프로그램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어 안타깝다"는 그는 "은퇴 후에는 소규모 아카데미 수준을 넘어 골프와 외국어 교육, 체력 단련과 재활 시설까지 갖춘 골프학교를 만들어 외국 학생들까지 와서 배우고 갈 수 있는 수준과 여건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일 큰 성공은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그는 "평범하더라도 나와 잘 통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골프여왕' 박세리(35∙KDB산은금융그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가 '맨발 투혼'이고 그에 못지 않은 또 다른 화제가 '공동묘지 훈련'일 것이다. 공동묘지 훈련에 대해 묻자 박세리는 손사래를 쳤다. "와전된 부분이 많아요. 미국에서도 그런 얘기 때문에 가끔 질문을 받는데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요." 아버지 박준철(64)씨가 박세리의 담력을 키우기 위해 한밤중에 공동묘지에서 스윙 연습을 시켰다는 일화는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사실인즉 아버지가 골프장에서 연습을 마친 뒤 체력훈련 삼아 걸어 내려오게 했는데 당시 카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드문드문 무덤이 있어 무섭기도 했다는 말이 부풀려졌다는 설명이다. 어쨌든 박세리에게 아버지의 존재감을 잘 드러내는 사례다. 박세리의 강한 멘털(심리)은 아버지를 닮기도 했지만 후천적인 교육의 영향도 컸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일부러 크고 작은 내기를 시키셨는데 내기에서 잃거나 지는 게 너무 싫었다"는 박세리는 "그게 자연스럽게 승부근성을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박세리의 영원한 골프 스승이다. 교육방식은 요즘으로 치면 '자기주도 학습법'이다. 박세리는 "아버지는 강요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차피 스스로 해야 되고 배우면서 강해져야 한다는 걸 어릴 때부터 깨닫게 하려고 하셨던 것 같다. 미국에서 혼자 성공이라는 걸 거둔 뒤 깨달았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어린 박세리를 골프장에 데려가 한 가지 과제를 던져주고는 일을 본 뒤 저녁에야 돌아오고는 했다. 혼자 남은 소녀는 그 과제를 갖고 하루 종일 고민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데이비드 레드베터, 톰 크리비 등 코치를 뒀지만 박세리 스윙의 근본은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지난해 박세리는 스윙에 대해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지난 9월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 한화금융 클래식 첫날 문제점이 와르르 드러나면서 82타를 쳤다. 모처럼 경기장을 찾은 아버지는 미세한 부분을 지적해줬고 묘약처럼 효과가 나타났다. 박세리는 "아주 작지만 항상 너무나 고민했던 부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느낌이 확 달라졌다"고 회상했다. 이번 겨울 동안은 아버지와 가족들이 미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비시즌 기간에 함께할 예정이어서 어느 해보다 든든하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아니까 스윙의 흐트러진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을 거예요. 2012년이 정말 기대돼요." 올해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으로 그랜드슬램의 마지막 조각 맞추기에 재도전하는 박세리의 꿈이 '영원한 스승' 아버지와 함께 무르익어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