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온종일 기계 소리가 들리는 공장 옆 살림집에서 성장한 소년이 있었다. 공장 직원들을 형이나 삼촌으로 불렀던 소년은 기계와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당연한 듯 그는 공대를 선택했고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공작기계 전문업체 화천기공 권영두 사장의 이야기다. 그는 화천의 창립자인 고 권승관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한층 뜨거워진 날씨에 광주 본사에서 만난 권 사장은 걸걸한 사투리로 자신과 화천의 성장 스토리를 즐겁게 풀어냈다. "대학 졸업 후 군 제대하고 바로 화천에 입사했지요. 처음부터 기계 잡고 일하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전 만들고 깎고 그러는 게 재밌더라고요." 지난 1975년 화천기공에 입사한 그가 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1997년. 22년 동안 그는 거의 생산부서에서 근무했다. 설계나 구매 등 다른 부서에서 일한 것은 몇 해 되지 않는다. 공작기계 전문 생산업체인 화천은 1952년 설립됐다. 1977년 세계 4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수치제어(NC) 선반을 개발했고 1983년에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CNC 밀링머신 및 Copy 밀링머신을 개발했다. 1993년 개발한 PC-NC 밀링머신 역시 국내에서는 처음 만들어진 제품이다. 현재 화천기계공업과 화천기공•서암기계공업•TPS코리아 등 4개 업체로 구성돼 있으며 세계 30여개국에 판매망을 갖추고 있다. 화천기계의 지난해 매출은 1,517억원, 화천기공은 1,487억원을 기록했다. 이렇게 성장한 화천이지만 권 사장이 입사했을 무렵에는 기술이 한참 뒤떨어져 있던 시기였다. 권 사장은 "신입사원 시절 일본 공작기계 업체 몇 곳으로 파견근무를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거기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요. 우리는 왜 이렇게 못할까, 화도 나고 욕심도 생기고." 일본에서 돌아온 그는 현지에서 직접 만든 부품으로 1977년 NC 공작기계를 생산했다. 컴퓨터로 제어되는 국내 최초의 공작기계였다. NC 공작기계를 생산한 후 화천은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1978년 세계 3대 공작기계 전시회 중 하나인 독일의 하노버 국제공작기계박람회(EMO)에 부스를 차렸다. 그것도 우리나라 업체 중에서는 처음이었다. "전시회장 정문 앞에 참가국 국기가 걸리는데 우리가 참가해서 태극기가 걸렸어요.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3평 남짓한 공간에 공작기계 3종을 전시한 초라한 부스이기는 했지만 말이죠." 당시 20대 후반의 '기술자'였던 권 사장에게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독일이나 일본 업체들은 박람회 때 각국의 딜러와 고객 수십명을 호텔로 초청해 설명회도 갖고 만찬도 열고 그러더군요. 그게 정말 부러웠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저희도 그렇게 하지만요." 올해 화천은 미국에서 열리는 시카고공작기계전시회(IMTS)에 참가한다. 전시공간도 900㎡(약 270평)로 30여년 전에 비해 100배 가까이 커졌다. 그곳에서 6종의 신제품을 발표할 계획이다. 미국과 유럽 등 거대 시장에서 새로운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해 수출을 늘린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화천의 전체 매출 중 수출 비중은 40% 안팎.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수출이 크게 줄었지만 올해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권 사장은 최근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바로 중국 업체들의 등장이다. "4월 일산에서 열린 공작기계전시회 '심토스'에 가봤는데 중국 제품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왔더라고요. 그런데 가격이 우리 제품의 7분의1밖에 안 하는 것도 있어요. 품질은 아직 떨어지지만 신경이 쓰입니다." 하지만 권 사장은 새로운 과제를 풀어낼 해법으로 정면승부를 모색하고 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지요. 중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입니다. 판매법인 설립은 물론이고 현지 생산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 시장 진출에 위험부담이 적지 않은 만큼 신중을 기하고 있다. 그는 "가기는 가는데 어떻게 잘 만들어 갖고 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화천은 국내 공작기계 시장의 2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현대위아와 두산인프라코어 등에 이어 3위다. 언제나 대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권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대기업과 경쟁하는 것을 어려움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는 길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요. 또 우리는 나름대로 차별화하려고 상당히 노력하고 있죠." 그는 대기업들이 고심하는 신성장동력도 멀리서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그는 "회사에 주물공장이 있는데 주물이 요즘 첨단산업으로 주목 받고 있는 소재산업의 일종"이라며 "거창하지 않아도 잘 아는 분야의 기술 개발을 열심히 하면 첨단산업으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평생을 기술자로 살아온 권 사장. 그래서 그는 청년들이 기술자를 선호하고 또 기술자가 인정받는 세상을 꿈꾼다. "좋은 회사고 나쁜 회사고 요즘에는 기계 잡고 하는 일을 모두가 기피해 안타까워요. 이공계를 가는 학생들이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기술자에 대한 그의 애정이 계속 이어졌다. "요즘 벽돌 제대로 쌓는 사람, 도배 잘하는 사람 구하기 힘들죠. 만약 누가 자신의 명운을 걸고 10년 동안 도배를 해보겠다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내로라할 장인이 될 겁니다." 기계와 기술에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CEO를 보면서 명운을 걸고 곁눈질 없이 공작기계 한 분야만을 50여년 동안 걸어온 화천의 경쟁력과 미래가 엿보였다. ■권영두 사장 약력 ▦1950년 광주 ▦1973년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졸업 ▦1975년 화천기공 입사 ▦1989년 화천기공 상무 ▦1995년 화천기공 부사장 겸 기술연구소장 ▦1997년 화천기공 사장 ▦1998년 광주전남 경영자협회 부회장 ▦2006년 한국공작기계공업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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