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외형경쟁에 카드 발급 남발…"업계·가계 부실 부메랑 우려"

[달아 오르는 카드전쟁]<br>은행·분사한 카드사 등 대출 미끼로 가입 권하고<br>카드론 등 고금리 대출로 막대한 마케팅 비용 보전<br>"카드연체 불 붙으면 대란" 금융당국 사전 대비 강화

플라스틱 머니의 새로운 유혹. 최근 은행 창구에서 대출이자 할인을 미끼로 카드개설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길거리 카드판매가 부활하는 등 외형경쟁 확대에 따른 카드사 수익성 악화 및 가계부채 부담 증가가 우려된다.


"카드 하나 만드시죠. 금리 낮춰드릴게요" 최근 신용대출을 연장하러 은행을 찾은 L씨. 이자를 낮춰준다는 창구 직원의 말에 신용카드를 하나 새로 만들었다. 그의 지갑에는 벌써 카드가 4개나 있다. 잘 쓰지 않아 장롱 속에 넣어 둔 카드까지 합치면 L씨의 카드는 무려 7장이다. 대한민국이 '카드 권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 신용카드가 현금을 대신하는 지급결제 수단임과 동시에 최대 한달 후 실제 돈이 결제되고 카드론을 받을 수 있는 도구임을 감안하면 달리 말해 '빚을 권하는 사회'가 돼가는 것이다. 특히 주요 은행이 최근 지배구조 정비를 마치고 영업전쟁에 뛰어든데다 분사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의욕적으로 시장을 공략하려는 카드사도 즐비해 올해 업계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포화 상태인 신용카드 시장에서 카드사들이 '블루오션'을 찾지 못한다면 결국 출혈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또 회원들이 구체적인 상환계획 없이 유혹에 빠져든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빚더미에 올라 앉을 수 있다. ◇신용카드가 다시 남발된다=카드업계의 외형경쟁은 갈수록 위험수위에 다가서고 있다. 은행계 카드사들이 은행창구에서 대출을 미끼로 새로운 카드에 가입할 것을 강요하는 상황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은 분당의 K씨 역시 창구 직원의 '강압'에 못 이겨 신용카드를 새로 만들었다. 그는 "대출 받는 사람은 당연히 신용카드에 가입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해 매우 불쾌했다"면서도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담당자의 비위를 거스르면 좋을 것 없어 가입했다"고 전했다. 휴대폰을 사거나 할인점에서 장을 볼 때도 고객은 카드 가입을 권유 받는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기계 값 공짜' '(신용카드로) 장바구니 물가를 잡으세요' 등의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통신사나 할인점과 연계한 카드사들이 자극적인 문구로 판촉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매달 일정 금액 이상을 사용해야 할인을 받을 수 있어 과잉소비를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 최근 휴대폰을 구입한 한 고객은 "휴대폰 기계 값 절약, 쇼핑금액 절약, 아파트 관리비 절약 등을 내세운 카드를 벌써 5~6개 만들었다"며 "각 카드마다 일정 금액 이상을 사용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비가 늘어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불법으로 규정된 길거리 카드판매가 최근 다시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고객심사를 철저히 하지 않거나 저신용등급을 중심으로 카드를 발급하면 결국 카드사와 국민에 고통이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금리 대출로 수익 보전하는 카드사=카드사들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써가며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관련 업계는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주장하지만 부가서비스 비용은 결국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사의 총수익 중 마케팅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25.4%로 전년(20.6%)보다 4.8%포인트 상승했다. 연회비 면제와 무이자 할부, 사은품 제공 등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은 고객유인 효과는 있지만 카드사의 경영에는 부정적인 요인이다. 값비싼 마케팅 비용을 치르면서도 카드사들이 수익을 내는 '비결'은 바로 현금서비스와카드론 등 고금리 대출상품이다. 카드사 대부분은 카드론에 20% 후반의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으며 고금리를 내야 하는 고객에게 집중적으로 영업하고 있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생긴 신판수익 감소분을 고금리 대출로 메우고 있는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 현금서비스 수수료 폐지 등으로 카드업의 수익구조가 점차 단순화돼가고 있다"며 "카드론에 수익을 의존하다 보니 대출심사 기준을 다소 폭넓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불붙으면 끝' 금융 당국 방화벽 더 두터워질 듯=최근 금융 당국이 카드업계에 잇달아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일종의 '예방접종'이다. 연체율 등 카드시장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수치는 비교적 안정적인 것이 사실. 하지만 카드연체는 한번 시작하면 동시에 여러 카드로 번지는 강한 휘발성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금융 당국의 논리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지표들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여러 좋지 않은 영업환경이 나타나고 있다"며 "카드대출은 리스크가 크고 문제가 생길 경우 해결방법도 취약하기 때문에 카드사들이 위기의식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드업계는 큰 틀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경쟁 환경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KB국민카드 분사, KT의 비씨카드 인수, 농협법 개정에 따른 농협카드의 시장공략 강화 등으로 경쟁의 고삐를 늦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외형경쟁을 줄이고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은 사실상 '자살골'을 넣는 것과 같다"며 "올해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생존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카드사도 먼저 나서서 경쟁축소 전략을 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