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29일] 국내 첫 패션쇼 개최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평생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배내옷에서 죽은 자를 위한 수의까지 사람은 옷과 함께 한다. 옷은 시대에 따라 다르고 지역과 나라마다 특색을 지닌다. 그래서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수단이 아니라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척도다. 개화시대 서양문물이 들어오던 때만 해도 옷은 지위나 신분을 나타냈다. 그러나 신분질서 파괴, 여성의 사회진출, 경제발전과 교육수준 향상 등 사회 발전과 함께 의생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제 옷을 사고 입는 일은 우리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04년 국내 의류시장 규모는 2조원대. 아시아에서 일본과 홍콩 다음의 패션 대국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쇼가 1956년 10월29일 서울 반도호텔에서 열렸다. 검정 물 들인 미군 군복이 최고의 생활복이었던 시절, 처음 열린 패션쇼는 대단한 이벤트였다. ‘찔레꽃’의 작가 김말봉이 사회를 보고 미스코리아 출신 강귀희와 무용가 김백초, 영화배우 최은희ㆍ조미령 등이 모델로 무대에 섰다. 당시 전문 패션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아마추어 모델들은 아직 양장에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뒷단추 옷이나 스커트의 앞뒤를 바꿔 입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국내에 패션쇼라는 생소한 이벤트를 연출한 주역은 노명자였다. 미국에서 디자인을 배운 그는 명동에 ‘노라노 꾸뜨리에(1950년)’와 ‘노라노의 집(1952년)’이라는 양장점을 열어 고급 의상실 붐을 일으킨 제1세대 패션 디자이너였다. 초창기 패션쇼에는 옷을 보러 가기보다 쇼가 신기해서, 예쁜 모델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패션이 드라마의 소재가 되고 김봉남(앙드레 김) 같은 남자 패션 디자이너들도 속속 등장해 부와 명예를 움켜쥐는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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