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교전이 보름 넘게 지속되면서 이스라엘 경제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미국·유럽 항공당국이 내린 이스라엘 노선 운항 중단조치는 해외투자가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대이스라엘 투자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22일(현지시간) 자국 항공사를 대상으로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으로의 운항을 최소 24시간 동안 금지한다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했다. 이날 오전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포가 벤구리온 공항 인근 2km 지점에 떨어지면서 이 지역의 항공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 아래 내려진 조치다.
미국에 이어 유럽항공안전청(EASA)도 유럽연합(EU) 역내 항공사들에 벤구리온 공항 운항을 삼갈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이에 앞서 독일의 루프트한자항공과 에어프랑스·KLM네덜란드항공 등 유럽·북미 지역 주요 항공사들은 자체적으로 이스라엘 운항을 잠정 중단했다. 이스라엘 항공 출입 중단은 제1차 걸프전 당시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향해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던 지난 1991년 이후 20여년 만이다.
미국·유럽 항공 당국의 이번 조치는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사건으로 교전지역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국제사회의 거듭된 요청에도 가자지구 폭격을 멈추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에 서구권이 보내는 경고 메시지 성격도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팔 사태 중재차 중동에 머물고 있는 존 케리 미 국무장관에게 전화해 "벤구리온 공항은 아이언돔(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으로 완벽히 지켜지고 있다"며 항공기 운항 재개를 요청했다. 케리 장관은 "(다른 목적 없이) 오직 자국민과 자국 항공사를 보호하려는 조치"라고 답했다고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이 전했다.
한시적으로 시행된 이번 조치가 좀 더 연장될지, 다른 지역 항공사까지 확대될지 등은 미지수다. 다만 이에 상관없이 벤구리온 공항이 이번 이·팔 사태의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일개 공항의 출입제한'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의 유일한 국제항공 통로인 벤구리온 공항의 지난해 이용객 수는 전체 이스라엘 인구(780만)의 두 배에 가까운 1,400만명에 달했다.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이주민 출신의 해외이동이 잦은데다 이스라엘과 거래하는 사업가 및 관광객 대부분이 이 공항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이번 조치는 벤구리온 공항을 이용하던 많은 이들에게 불안감을 확산시킴으로써 대이스라엘 투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아이언돔 방어체제 구축으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로 평가됐던 공항마저 하마스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부각된 것은 이스라엘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8일 이스라엘의 첫 가자 공습 이후 2주째 계속돼온 이·팔 교전의 와중에도 이스라엘 금융시장은 견고했다. 대규모 공습 및 지상군 투입이 단행된 보름간 이스라엘 증시(텔아브비100지수)는 오히려 0.98% 올랐다. 이스라엘의 통화(셰켈화) 가치도 달러 대비 0.28% 상승했다. 이·팔 갈등이 수십년간 거듭돼온 데 따른 학습효과 덕분에 최근의 전쟁 리스크가 오히려 투기기회로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이번 공항 폐쇄에서 드러난 서구권의 우려 등을 감안하면 전쟁 장기화에 따른 부담감을 이스라엘 경제가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스라엘의 온라인 매체인 하레츠는 "이번 가자지구 공격이 길어질수록 정부는 민간 부문으로부터 군비지출을 늘리려고 할 것"이라며 "재정적자가 심화되고 경제성장률도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스라엘 레우미은행은 최근 자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을 당초 2.9%에서 2.7%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외국계 은행들은 현재 달러당 3.41셰켈 수준인 이스라엘 통화가치가 "너무 비싸다"며 달러당 3.80셰켈이 적당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하레츠는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