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수를 살리고 고용을 늘리는 내용으로 내년도 세법 개편안과 예산안을 마련했지만 국회 처리를 낙관하기 어려워 애를 태우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문제를 놓고 여야가 전면 대치하면서 처리 일정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이번 10ㆍ26 재보궐선거에서 '2040 세대'를 중심으로 전셋값 폭등, 물가 상승, 고용 불안 등 민생 문제에 대한 불만과 복지 확충 욕구가 분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총선ㆍ대선을 앞두고 표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여야로서는 선심성 예산 편성에 한층 더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정부로서는 불요불급한 재정지출의 삭감을 골자로 한 내년 예산안의 국회 통과를 자신할 수 없게 된 셈이다.
당장 세제 개편안의 경우 첫 심의 일정부터 불투명하다. 세법을 다루는 국회 재정위원회는 오는 31일부터 조세심의를 개시하기로 했지만 이날은 한미 FTA 이행을 위한 부수 세법(개별소비세법ㆍ관세특례법) 개정 여부만을 다루기로 하면서 다른 세법들은 후순위로 밀렸다. 재정위는 FTA 세법에 밀린 정부 세제 개편안은 다음달 7일부터 다루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31일에 FTA 세법 심의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다른 세제 개편안 일정은 한번 더 미뤄질 수 있다.
재정위 조세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길부 한나라당 의원 측도 "31일 FTA 관련 세법 심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외교통상위원회에서 무역협상안(FTA 비준안)을 통과시킴과 동시에 관련 입법도 함께 처리하려 하지만 야당 측은 먼저 비준안을 통과시킨 뒤 관련 입법을 심의하자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강 의원 측의 설명이다.
여야가 우여곡절 끝에 FTA 세법을 처리한다고 해도 정부 세제 개편안 심의가 곧바로 순항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조세소위에 참여하고 있는 이용섭 민주당 의원 측은 "법인세 과표구간을 신설해 해당 구간에 대해서만 추가 감세를 하자는 정부의 주요 법인세 개정안 등에는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다른 세법 개정안들에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재정위 내 일부 지방 출신 의원 중에서는 지방 중소기업들의 반대표를 의식해서인지 정부가 추진 중인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에 다시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이런 가운데 예산안마저 복지ㆍ교육 예산 증액 문제를 놓고 정부와 한나라당 간의 줄다리기에 휘말리게 됐다.
표심을 의식한 한나라당이 5세 이하 아동 전면 무상보육, 영ㆍ유아 예방접종비 전액 국가 지원 등을 주장하며 관련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내년도 총선을 겨냥해 자신의 지역구에 선심성 예산을 끌어오려는 동향을 보이는 것도 악재로 꼽힌다.
이에 대해 재정부 예산실의 한 관계자는 "예산 심의ㆍ의결권은 국회가 가지고 있지만 증액을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재정부 장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선심성 예산 증액 요구는 과감히 거부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