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는 당초 도널드 창 현 행정장관의 후임으로 헨리 탕 전 정무사장을 지지했다. 하지만 올 들어 탕 후보가 혼외정사 스캔들에 이어 대저택 지하에 초호화 수영장 등을 불법 개축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부패 이미지가 나타나면서 홍콩 시민의 지지도가 급락하자 막판에 경쟁후보인 렁 후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홍콩 시민에게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는 탕 후보가 당선될 경우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 이에 따른 중국과 홍콩 간의 관계악화 등 후폭풍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됐기 때문이다.
렁 신임 장관은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 이민자 출신으로 부동산 컨설팅 분야에서 일하다 1985년부터 홍콩기본법 자문위원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1999년부터는 홍콩정부 자문기구 성격의 행정회의 의장을 맡아왔다.
하지만 렁 장관도 탕 후보의 부패 추문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당선됐을 뿐 홍콩인들에게 이렇다 할 지지를 받지 못해 앞으로 정책운영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선거 민주화를 요구하는 야당과 시민ㆍ대학생 등 수만명이 선거장소인 홍콩전시회의센터 주변을 둘러싸고 '부정선거를 중단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홍콩 선거체계는 현재 재계ㆍ교육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1,200명의 선거인단이 행정장관을 뽑는 간접선거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들 대부분이 친중국계 인사로 채워져 사실상 중국 정부가 낙점하는 인사들이 선출되는 구조다.
안슨 찬 홍콩 전 수석장관은 "중국이 행정장관 선거에 개입함으로써 홍콩의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다"며 "중국 정부가 홍콩 시민의 여론을 담아낸다며 렁 후보를 대안으로 택했지만 렁 후보는 인권ㆍ법치 등 홍콩의 가치를 담아낼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홍콩 정치분석가들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중국이 주장하는 1국가2체제가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불거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렁 장관은 2003년 홍콩 민주화시위 발생 당시 경찰진압과 최루탄 발사를 주장하는가 하면 한 라디오 방송국의 허가기간 단축을 요구하는 등 인권과 언론자유 수호에 부적절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국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렁 장관은 앞으로 인권ㆍ민주화 등 민감한 정치 문제는 물론 금융ㆍ부동산 등 경제정책에서도 홍콩 시민의 욕구를 담아내는 동시에 중국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시험대에 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접선거 도입을 앞두고 홍콩의 민주화 욕구와 중국의 개입과정에서의 충돌 가능성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최대 난제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인들은 현재 중국인의 주택 사재기 등으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 커지는 빈부격차에 따른 불만이 비등한데 렁 장관이 이를 어떻게 해소해나갈지도 관심거리다. 렁 장관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서민지원, 공공주택 건설확대 등의 정책공약을 내걸며 홍콩 재벌인 리카싱의 반발을 사는 등 재계의 기득권층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