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금융개혁방안이 금융개혁위원회가 설치도 되기전부터 용두사미가 되어가는 형국이다.오는 20일 금개위가 정식 발족되지만 거론되고 있는 위원의 면면이나 민간출신의 위원장 물망인사들이 괜한 들러리나 서는게 아니냐는 우려에서 고사하고 있다는 소식만 보더라도 금개위의 방향은 짐작된다. 당초 민간출신을 절반이상으로 할 계획이던 금개위원은 관변의 전문가들로 상당수 메워질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의 오랜 금융관행상 정부에 대해 발언이 자유로운 기업인은 없다. 청와대 직속으로 금개위를 설치한다는 것은 민간의 요구사항을 대통령의 힘으로 최대한 담보해주겠다는 의지의 표시라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그 방향이 어긋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개혁안이 나왔을때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승수 재경원장관은 금개위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보다 분명한 한계를 설정하고 나섰다. 그는 금개위가 할수 있는 단기과제는 3월말까지 마무리하고 중장기과제는 연말까지 마련해 다음 정권으로 넘기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재경원이 실무작업에 적극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잊지않았다. 금개위의 역할은 3월안으로 사실상 끝나고 중장기 과제는 결국 재경원이 알아서 하게 될 것이라는 시사이다.
금융개혁의 핵심과제는 관치금융의 철폐에 달렸으므로 재경원이 배제돼야만 개혁이 성공을 거둘수 있으리라는 민간쪽의 기대와는 동떨어진다.
물론 금융정책의 주무부서인 재경원을 도외시하고서 개혁이 수행되기는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러나 재경원이 개혁의 스케줄을 잡아쥐고, 논의과정에 적극 개입할 의사를 명백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혁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것인지 의문이다.
금융개혁은 어제 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해답이 뻔히 나왔는데도 실천이 안되어서 문제인 것이다. 재경원은 은행법과 금융산업구조조정에 관한 법 등을 제정해 금융개혁을 추진할 예정이었음을 내세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금개위의 설치 필요성을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밝히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경쟁력 10% 높이기의 하나로 금리인하를 추진하면서 재경원이 내놓은 것은 지준율인하라는 고식적인 처방이었는데 이는 금리를 올리는 기능밖에 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재경원이 할일은 자기반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융시장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뒤늦게 언제 시행될지도 모르는 법 한두개를 제정한 것으로 금융산업 경쟁력강화를 위해 할일을 다했다고 말할수 있는 것인가. 밥그릇 챙기기나 부처이기주의에서 당연히 해야할 일, 손쉽게 할수 있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는지를 돌이켜 봐야한다. 금개위의 논의과정에서 재경원이 취해야할 태도는 민간의 주장을 겸허하게 경청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