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재정난이 촉발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을 잠재우려면 유럽 구제금융 기금을 지금의 2배인 총 1조5,000억유로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유럽중앙은행(ECB)에서 나왔다.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민간 투자자들에게 고통분담을 강요하는 대신 회원국들이 또 한번의 '돈 폭탄'을 투하해야 한다는 의미여서 독일 등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인 누트 웰링크 ECB 정책이사는 17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발(發) 전이효과가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면 유럽 구제금융 기금으로 1조5,000억유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회원국들이 유로존을 통화동맹으로서 끝까지 지켜내려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대형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와 IMF가 그리스 1차 구제금융 당시 총 7,500억유로의 천문학적인 돈폭탄을 투하키로 합의하며 시장을 안정시켰던 것처럼 이번에도 강력한 충격효과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 같은 발언은 그리스 위기에 대한 회원국들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는 ECB의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유럽 구제금융 기금은 현재 총 7,500억유로 규모로 ▦ 유럽금융안정기구(EFSF) 4,400억유로 ▦EU펀드 600억유로 ▦IMF 자금 2,500억유로로 구성돼 있다.
이런 가운데 EU와 IMF는 16일 그리스 1차 구제금융의 5차 인도분(120억유로)을 오는 7월초 집행키로 기정사실화했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에 '여름 위기설'을 불러일으켰던 당장의 디폴트 위기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의 동요는 진정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올리 렌 EU 경제ㆍ통화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오는 19일 열리는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내달 초로 예정된 구제금융 5차분 승인을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5차 인도분이 집행되면 7월 만기인 총 70억달러 규모의 그리스 국채 원리금 상환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5차분 승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2년물 국채 수익률은 16일 장중 한때 30%를 넘어섰으며,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무려 2,060bp(1bp=0.01%)까지 치솟았다. 그리스 위기의 전이효과가 가시화하면서 스페인 10년물 국채 수익률도 이날 장중 5.73%까지 솟구쳐 11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로이터통신은 "그리스 사태가 어떻게 종결되든 시장은 실질적 채무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