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석유 선물계약 도입 시급

최근 이라크전쟁이 종결되면서 국내 정유사들은 일제히 휘발유가격을 내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가운전자들은 10부제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다. 10부제를 통해 에너지 절약을 유도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감내해야 할 소비자의 불편과 실질적인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이 크지 않은 듯하다. 매번 반복되는 일이고 필요성이 항상 지적되지만 국제유가 등락에 따라 자존심도 없이 춤을 추는 국내 석유가격을 안정화할 수 있는 방안은 과연 없는 것인가. 국내 총수입액 가운데 20%에 육박하는 에너지 수입비중과 국내경제 전반에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을 감안하면 `석유가격 안정화`라는 명제는 소홀히 할 수 없는 정책사안이다. 중장기적으로 산업구조를 에너지 저소비형 구조로 전환하고 에너지 기기의 효율성을 높이며 에너지 조세개편을 통해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하는 정책적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경험한 국제유가 급등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신속하게 대처할 수단으로 선물계약ㆍ옵션계약ㆍ스와프계약 등의 파생상품을 활용한 `헤징`이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위험회피 내지 위험관리 방안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듯하다. 원유나 석유제품은 아니지만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도 파생상품이 이미 도입돼 주가지수 선물과 옵션이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다. 또 98년 부산에 개설된 선물거래소에서는 금, 원ㆍ달러 환율, 회사채 이자율과 국채 이자율 등을 기초로 한 파생상품들이 거래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이들 파생상품이 부동산이나 주식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금융투자 대상으로만 인식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해당상품의 가격변동에 대비한 위험회피 내지 위험관리 수단을 제공한다. 그런데 파생상품과 이들을 활용한 헤징은 마치 해외 선진금융지식을 활용한 복잡한 경영기법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부지불식간에 활용하고 있는 간단하고 쉬운 개념이다. 헤징이란 실물자산의 가격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회피하거나 관리하기 위해 실물자산을 기초로 파생된 금융자산을 매수ㆍ매도해 실물자산의 가격변동에 관계없이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보편적인 예로 농민과 중간도매상 사이에 이뤄지는 소위 `밭떼기`라고 불리는 쌍방계약이 해당한다. 그리고 자동차보험이나 화재보험 등에 가입하는 경우도 개인차원에서 재산손실에 대비한 헤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헤징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A라는 자산을 보유한 상태에서 가격의 움직임이 거의 동일한 B라는 자산을 매도하는 경우를 가정하자. A의 가격이 떨어지면 B의 가격도 떨어지지만 B는 이미 가격이 떨어지기 전에 매도한 상태이므로 가격하락에 따라 오히려 이득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A의 가격하락에 따라 발생한 손실분은 B의 매도로 인해 발생한 이득으로 상쇄할 수 있다. 이러한 간단한 헤징의 원리를 원유나 석유제품에 적용시킨다면 이들 상품을 기초로 한 선물계약이나 옵션계약을 미리 매수, 국제유가 급등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손실을 파생상품 거래를 통한 이득으로 보전할 수 있다. 결국 석유위기에 대비한 국내 비축유와 정유사의 수입원유 등에 이를 그대로 적용시킨다면 국제유가가 아무리 오르더라도 가격상승 이전의 수준으로 고정시킬 수 있다. 물론 파생상품 거래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은 고려돼야 하지만 이러한 거래비용은 유가급등에 따라 직접 치러야 하는 비용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마치 자동차보험이나 화재보험 계약에서 불의의 사고로 수령할 보험금액과 이에 대한 대가인 보험료의 상대적 수준을 비교하면 될 것이다. 앞으로 중동에서의 위기사태로 인해 유가가 급등하지 않기를 우리 모두는 원한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유가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당장 연말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를 넘어서 40달러, 그리고 그 이상으로 치솟을 경우 앞서 제시한 중장기적인 방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최근 국내에 석유상품을 대상으로 한 선물계약을 도입할 필요성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선물계약을 활용한 헤징 방안은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국내유가 안정화를 위한 유일한 방안은 아닐지라도 소요되는 비용이 가장 저렴하며 즉각적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대안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유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사후약방문식의 사후대책을 수립하기에만 급급한 정부의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 이제 국제유가의 움직임에 대해 `투기적` 태도를 지양하고 `위험관리적` 태도로 전환하는 정부의 결단이 요구된다. <윤원철(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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