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실기업 도산절차 간소화

■ 도산 3법 통합 윤곽도덕적해이등 부작용 없게 회사정리ㆍ화의ㆍ파산법 등 도산관련 3법 통합작업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화의법은 완전히 폐지되고 도산절차는 법정관리와 파산으로 단순화된다. 그대신 화의제도가 갖고 있는 순기능은 'DIP'(Debtor-In-Positionㆍ경영권 유지) 제도의 제한적 도입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화의법 폐지는 부실기업들의 경영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 있던 기업퇴출시스템의 전면 개편을 의미한다. 도산 3법 통합으로 법원의 판단비중이 크게 확대됨에 따라 전문병원격인 파산법원이 신설되며 법정관리와 파산제도에도 수술이 가해진다. 도산관련 제도에도 경제적 논리가 적용돼 기업갱생에 크게 기여한 관리인이나 채권분배를 잘한 파산관재인에게는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주어질 전망이다. ◆ 화의법 왜 없어지나 지난 62년 소규모 가족회사와 단순기업들을 위해 도입된 화의제도가 남용돼 부실기업주들의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집중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외환위기 직후부터다.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고 줄도산이 이어지자 기업들은 법정관리나 파산을 택하기 전 시간을 벌기 위해 무더기로 화의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부작용이 심각하게 드러났다. 법정관리기업들을 관리하기에도 벅찬 법원은 화의기업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경영을 계속 유지하던 부실기업주들은 선의의 제도를 생명연장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규모와 부실에 상관없이 법원이 화의신청을 쉽게 수용하고 있으나 해당 기업이 사후 감독을 소홀히 하는 틈을 타 재산을 빼돌리는 등 화의제도가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얼마 전 김종대 부산지법 제12민사부 수석부장판사가 법원 내부 통신망에 띄운 기고 내용이다. 화의기업들이 화의만을 받을 목적으로 화의채권자와 짜고 지키지도 못할 화의조건을 내세운 뒤 이를 이행하지 않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자 법원은 올해부터 이 제도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 7월 서울지법은 '직권화의 취소결정 여부 심리를 위한 보정명령 및 의견조회'라는 제목의 공문을 통해 화의기업 대폭 정리 방침을 밝히고 화의취소 결정을 잇따라 내리고 있다. 급기야 최근 감사원의 공적자금 특별감사에서도 도산관련 제도에 대한 문제점이 크게 부각됐다. 감사원은 도산절차 이전 단계와 진입 이후 단계에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법무부에 관련법률을 조속히 정비할 것을 통보했다. ◆ 순기능은 유지 그러나 화의제도 자체가 갖고 있는 순기능은 그대로 유지된다. 부실기업의 도산신청절차는 세 가지에서 한 가지로 일원화되고 법정관리로 할 것이냐, 파산으로 갈 것이냐는 법원이 결정한다. 다만 법정관리 명령이 내려진 기업 중 기존 경영진이 경영을 맡아야 갱생이 빨라질 것으로 판단된 기업에 대해서는 DIP 제도가 적용된다. 기업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기존 경영진에게 주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적 정서상 DIP 제도는 극히 제한적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60대 주채무계열 등 대기업들이나 부실의 책임이 명백한 기업, 채권단이 원하지 않는 경우는 DIP 제도 적용대상에서 배제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화의법이 폐지되더라도 현재 화의가 진행 중인 기업들은 화의절차를 계속 밟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도산 3법이 이런 방향으로 통합될 경우 화의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처음부터 절차를 다시 밟거나 법정관리기업이 파산을 신청하며 똑같은 절차를 밟는 데 따르는 시간낭비(time cost)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DIP 제도란 미국이 지난 78년 도입한 기업갱생제도로 신연방도산법 11장(Chapter 11)에 규정돼 있다. 핵심은 도산절차를 진행 중인 부실기업의 갱생을 기존 경영진에게 맡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화의법과 유사하나 법원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관리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갖고 있다. 담보권자를 포함한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제한되고 구주 소각 등에 따라 기업지배구조에도 큰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법원은 경영진의 부정행위나 무능 등 일정한 기준에 따라 관리인을 선임한다. 그동안 국내에서 이 제도에 관한 논의가 있기는 했으나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소유지배구조 문제가 해결되고 금융규제가 완전히 정상화된 이후에나 도입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아직은 주류를 이룬다. 이에 따라 DIP 제도는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 중 기존 경영인의 부실책임이 없는 기업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즉 기존 경영진 선임을 원칙으로 하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관리인 선임을 원칙으로 하고 구 경영진 선임을 예외로 적용하는 제한적 방식이다. 박동석기자 전용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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