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밀리언달러 호텔' 감독 빔 벤더스
「파리 텍사스」(84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베를린 천사의 시」(87년 칸영화제 감독상)로 유명한 80년대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했던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지난 7일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
그는 이날 남포동 부산국제영화제 광장에 손바닥도장을 남기는 핸드프린팅 행사에 참가했고, 기자회견에 이어 아시아 초연으로 상영된 「밀리언달러 호텔」관객과의 대화에서 한시간 넘게 무대에 걸터앉아 격의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탈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기쁘게 했다.
영화 시작전 벤더스 감독은 『쿠바 하바나를 배경으로 찍은 작품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곳을 가고 싶어하나, 이 작품은 LA에서 살벌한 지역이므로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는 부탁을 했다.
올해 50주년을 맞는 베를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던 「밀리언달러 호텔」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실재하는 「밀리언달러 호텔」을 무대로, 싸구려 호텔에서 희망없이 살아가는 비정상적 사람들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묻는 작품.
이들의 시중을 드는 순진한 톰톰은 아름다운 거리의 여성 엘로이즈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날, 호텔에 살던 이지가 지붕에서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가 억만장자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살인혐의를 받게되고 호텔에는 깐깐한 스키너 형사가 이끄는 특별수사대까지 투입된다.
『올해가 새천년의 시작이라는데 의미를 두고 만들었다. 밀리언달러 호텔은 가난과 위험이 가득찬 장소다.
그러나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젊은이들은 사랑을 발견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킨다. 결국 주인공처럼 순진한 사랑의 눈이 세상을 바꿀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벤더스 감독은 『우리 삶과 직결된 상황이 있는 곳에서 조금은 동화적이고 우화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제 LA에서 이 호텔을 본 순간, 나는 「이곳에는 이야기가 있다!」고 직감적으로 결정했다.
이 호텔은 1914년 지어질 때만해도 LA에서 최고급 호텔이었고 대통령이 캘리포니아에 올때 이용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라리 정신병동이나 극빈자 숙소라고 부르는 게 알맞을 싸구려 숙소로 전락했고, 「백만달러」란 호텔 이름은 아이러니가 되었다.
레이건정부의 사회복지 삭감정책이 낳은 오갈데없는 버림받은 이들로 가득찬 백만장자 호텔이란 건 미국이 안고 있는 모순의 진열이며 아메리칸 드림의 역설이다』고 덧붙였다.
「가장 미국화한 감독으로 보인다」는 질문에는 『미국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파리 텍사스」가 개봉되자 미국인들은 미국영화와는 다르다고 말했다』고 영어로 답한 후, 독일어로 『나는 독일의 마음을 지닌 유럽감독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시스템을 이용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대규모 제작자의 틈바구니에서 게릴라전투를 하듯 영화를 만듬으로써 이제는 미국에서도 작가주의적 제작방식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76년 독일문화원에서 「뉴 저먼 시네마」세미나가 있어 한국에 왔었다』는 그는 『그때 만났던 한국 청년 영화인들의 열정과 수준높은 대화를 분명하게 기억한다. 또한 친구들이 부산영화제에 안 가면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라해서 다시 왔다』고 말했다.
박연우기자
입력시간 2000/10/0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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