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1일] 건함세

세금이 혁명을 낳고 왕의 목까지 잘랐다. 무리한 징세의 출발점은 국방력 강화. 영국왕 찰스1세는 악착같이 관세를 거뒀지만 스페인과 프랑스에 대항할 함대를 건설하는 데는 턱없이 모자랐다. 대안은 건함세(Ship Money) 징수. 1628년 3월1일, 국채 강매 형식으로 17만3,000파운드의 건함세가 할당됐다. 즉각 조세저항이 일었다. 종전의 건함세는 전쟁시 해안지역에 국한된 한시적 특별세였던 반면 찰스1세의 건함세는 전국에 대한 항구적 목적세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 왕은 반발하는 의회를 해산시키고 마음대로 세금을 매겼다. 1634년과 1635년에 부과된 세금은 모두 31만2,000파운드. 연간 재정이 120만파운드 안팎이던 시절이다. 불만이 높아지고 ‘평시의 건함세 징수는 부당하며 전시라도 의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소송도 걸렸다. 판결은 왕의 승소. 7대5라는 근소한 차이였다. 찰스1세는 우쭐해졌지만 곧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반란을 진압한다며 마음대로 군사를 일으킨 끝에 재정난에 봉착해 1640년 의회를 소집할 수밖에 없었다. 11년 만에 열린 의회는 왕에 대한 성토장. 해산과 재소집을 거친 의회는 1641년 건함세를 없애버렸다. 왕과 의회의 대립은 내전(청교도 혁명)으로 번졌다. 결과는 의회의 승리. 건함세로 건설된 함대마저 의회 편을 들어 찰스1세의 처형(1649년)에 한몫 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건함세는 그냥 소멸되고 말았을까. 왕의 처형이라는 대가를 치렀지만 건함세는 바다를 지배하는 영국 해군의 초석을 깔았다. 조세행정의 두 가지 철칙도 교훈으로 남겼다. ‘세금 느는 데 반길 사람 없다’는 점과 ‘아무리 명분이 있는 세금이라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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