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0월 29일] 복수노조 허용의 선결과제

두 번씩 미뤄온 기업단위 복수노동조합이 내년부터 허용될 예정이다. 이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에 대해 정부안의 기초가 되는 노사정위원회 공익안은 미국식 '과반수대표제'를 구상하고 있다. 얼핏 보면 민주주의 기본원리에 적합한 방안으로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시행에 매우 곤란한 문제들이 산적해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현실 맞게 교섭창구 단일화를 우선 미국 제도는 산별ㆍ직종별 노조가 일반적인 미국의 상황에서 등장한 것으로 산하 특정 기업 과반수 대표선거에서 패하더라도 노조의 존립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기업별 노조가 일반적인 우리나라의 경우 대표선거는 노조의 존립과 직결되므로 최근 현대자동차 위원장 선거에서 보듯 많은 불안이 예상된다.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가 최근 기업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70%가 복수노조 허용시 노노갈등 및 선명성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둘째, 투표가 실시되는 가장 기본적인 교섭단위 문제에 대해서 제도의 원천국가들인 미국ㆍ캐나다에서조차 업종과 직종이 세분화ㆍ전문화되면서 아직도 많은 다툼이 발생하고 있다. 공익안은 사업(장) 단위로 하고 노조의 신청과 노동위원회 결정으로 교섭단위 분리가 허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기준이 애매하며 당해 결정에 불복해 소송이 진행될 경우 대표선거제는 장기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미국ㆍ영국ㆍ프랑스에서는 항공사나 대기업들이 복수노조 난립으로 도산에까지 이른 사례가 있다. 셋째, 교섭대표가 선출된 대표노조는 다른 노조 전임자나 사무실 같은 기본적 운영 관련 내용까지 사용자와 합의해야 하는데 과연 성실하게 교섭을 진행할까. 이에 대해 공익안은 대표노조에 '공정대표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기준과 담보장치가 막연하다.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규정이 없는 국내 여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표노조의 다양한 부당행위에 대한 규제책과 구제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으면 노사관계 혼란을 막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과반수 노조의 대표성이 단체협약 유효기간과 마찬가지로 2년간만 유지되므로 차기 선거를 고려하면 사실상 '항시 선거체제'라는 불안한 상황이 계속된다. 실제로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 조사결과 기업의 64%는 '복수노조 허용시 새로운 노조가 설립될 것'이며, 50%가량은 '많은 혼란과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과반수대표제의 문제점이 이처럼 심각하다면 근본적인 대안으로 비례대표제나 자율교섭제를 고려할 수 있다. 그런데 비례대표제는 교원노조에서 실시해본 결과 소수 노조가 사실상 동등한 지분을 행사, 교섭이 장기간 난항에 빠지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했다. 자율교섭제는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각종 노조 난립으로 교섭상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 상충된다는 견해가 있지만 문제되는 핵심 협약(87호ㆍ98호 협약)은 유럽 기준에 따른 것으로 미국도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근로자 노조 선택권은 보장돼야 근로자의 자유로운 노조 선택권은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복수노조 허용이 국가경제와 기업의 존립, 사회질서에 끼칠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면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재검토, 앞에서 제기한 쟁점들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 전까지는 조직대상이 다른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현행 법령을 활용하면 된다. 노사관계 정책은 현실에 맞고 섬세하게 입안해야 국가와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지 않는다. 우리는 올 상반기 비정규직 사용기간 상한(2년)을 연장해야 '100만 해고대란'을 막을 수 있다며 비정규직법 개정을 추진하다 혼란만 자초했던 정부ㆍ여당의 실책을 경험했다. 현실에 안 맞는 노동정책의 부작용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