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책상물림의 한계

현상경 기자<경제부>

“알 수 없습니다”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따져보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31일 영세자영업자 대책 브리핑 자리. 담당 실무자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가장 많이 한 대답은 위 세 마디다. 답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책상머리에 앉아 전화기만 돌리면서 만든 정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가 내놓은 자영업자ㆍ재래시장 대책은 탁상행정의 ‘모범사례’이자 ‘종합 선물세트’로 꼽힐 만하다. 일선 현장에 발 한 번 내딛어보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내년부터 세탁업소에 자격증 제도를 도입한다고 한다. 요즘 세탁소 중 상당수가 세탁물 수거 후 본사공장에서 세탁, 배달만 한다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맥도날드처럼 전망 좋은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전환시킨다고 한다. ‘가게만 열면 성공한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퇴직금 날리고 소비자보호원을 찾은 수백건의 프랜차이즈 사업 피해사례를 보지 못했나. 전문가 컨설팅으로 240만 자영업자의 사업을 도와준다고 한다. “경기가 엉망이니 장사가 안되지, 누가 사업하는 노하우를 몰라서 그러느냐”는 동네 치킨 집 아저씨의 하소연 한번 들어보지 않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전국에서 활동하는 컨설턴트가 불과 1,000명 내외다. 영업이 잘되지 않는 재래시장을 지자체가 알아서 퇴출시킨다고 한다. 언제부터 ‘시장’이 관(官) 마음대로 생기고 없어질 수 있는 것이었던지. 6~7개 부처가 수개월간의 실태조사를 거친 정책이라지만 대책 그 어느 곳에서도 국민들의 살아 숨쉬는 목소리는 담기지 않았다. 심지어 복지부의 담당실무자는 시행시기, 대상자 등을 알려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바로 자료를 내놓겠다”고 약속한 후 전화기를 꺼버리고 사라지기까지 했다. 국민들이 알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이날 저녁 청와대에서는 “오늘만큼 칭찬을 많이 받은 정책은 없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기분이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