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10월 25일] 정밀타격 수사를

지난 2004년 법조팀장 때다. A그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대검찰청 출입현관 앞 구조가 어떻게 생겼냐는 거였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본부는 안대희 검사장(현 대법관) 지휘하에 2002년 대선자금 수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대검찰청에 불려가고 있었으니 차례를 앞둔 A그룹으로서는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소환자의 동선을 놓고 도상훈련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그룹 총수들은 하나둘씩 검찰을 다녀갔고 일괄 불구속기소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권력에 밉보이지 않으려고 '울며 겨자먹기'로 또는 보험금 성격으로 대선자금을 줄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는 상황논리가 엄벌 여론을 앞섰다. 정치자금이라는 뿌리 깊은 관행의 근절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컸던 것이다. 전적으로 기업만의 잘못이라기보다 엄포를 놓으며 손을 벌린 정치권이 더 큰 문제라는 상식적인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이후 1년 넘게 잠행하던 대검 중수부가 전면에 등장했다. 타깃은 폐업 상태인 C&그룹. 21일 아침 서울 장교동 본사 건물을 불쑥 치고 들어가더니 임병석 회장을 자택에서 체포했다. 준비를 많이 했으니 일사천리다. 이에 더해 검찰 내부에서 비자금 수사대상으로 대기업 2~3곳이 더 있다는 첩보가 흘러나왔다. 재계는 얼어붙었다. 중수부의 칼끝이 자신을 향해 오는 건 아닌지 비상이 걸렸다. 동시에 "그러면 그렇지"하는 허탈한 탄식도 터졌다. C&그룹 수사의 목표가 전 정권의 유력 인사라는 얘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천하의 대검 중수부가 죽은 C&을 치느냐"는 지적에 몸통은 따로 있다는 투로 검찰이 반박하는 과정에서 수사의 칼날이 정치권, 그 중에서도 야권을 겨냥하고 있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박연차 게이트가 '영남선' 수사였다면 이번은 '호남선' 수사라는 얘기다. 대기업은 요즘 안팎으로 힘들다. 미중 환율전쟁에 '새우등 터질라' 좌불안석이다. 세계경제의 성장 둔화로 실적 악화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대ㆍ중ㆍ소 상생협력에 고용확대ㆍ서민대출까지 어깨 위에 얹혀진 짐이 한둘이 아니다. 이제 사정 폭풍에도 시달려야 하니 죽을 맛이 따로 없다.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데 멀쩡한 부위까지 피로 물들일 필요는 없다. 정밀하고 신중한 수술로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극소화하는 중수부의 칼솜씨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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