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외자 순기능론의 虛

이찬근 <인천대 교수ㆍ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

현재 우리 경제는 전례 없는 자신감의 위기에 휩싸여 있다. 그 주된 원인으로 크게 관심을 끈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이 한국의 산업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중국 블랙홀론’이고 다른 하나는 친노동자적 혹은 반시장적인 정권이 출범함으로써 국내외의 자본이 투자를 꺼린다는 ‘자본 스트라이크론’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활력상실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보다 심층의 구조적 원인으로 외국자본 순기능론의 허(虛)를 짚어봐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은 ‘외자=개혁의 파트너’라는 등식과 함께 한국경제의 전략적 핵심지점을 장악함으로써 돈 잘 버는 우량기업은 있는데 투자가 안되고 일자리 창출이 멈춰진 ‘우량의 역설’이라는 현실의 모순을 초래했다. 자칫 자유방임적 외자지배가 지속 강화될 경우 한국경제가 중남미경제로 전락하고 말 수 있다는 위기의식마저 갖게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에 유입되는 외국자본은 종래 대출자본에서 주주자본으로 그 형태가 크게 바뀌었다. 이로써 외국자본은 과거 채권자의 지위였다면 이제는 주주로서 기업이 창출한 이익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강력한 발언권을 갖고 그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됐다. 과연 이들 자본이 인내심을 갖고 한국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견인할 것인지 아니면 단기적으로 이윤을 빼먹고 떠날 것인지는 전적으로 이들의 의사결정에 달려있다. 이것이 한국경제 중남미화의 1단계를 의미한다. 둘째, 외국계 주주자본이 추구하는 단기적 이익극대화로 인해 투자가 위축되면서 남아도는 돈이 넘치고 있다. 그러니 이자율은 인플레를 보상하기도 어려울 만치 하락해버렸고 돈 있는 자들은 어디에 돈을 굴려야 할지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자본수요의 위축이 심화될 경우 곧이어 가시화될 문제가 바로 자본도피 현상이다. 국내에서 투자처를 잃은 자본이 해외로, 다시 해외로 도망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중남미화의 2단계를 의미한다. 셋째, 국내 자본시장은 이미 충분히 자유화됐고 이로써 자본의 협상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브라질의 룰라 정권이 그러하듯 민주화된 정부는 도대체 취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뚜렷하지 않다. 정권은 잡았는데 자본을 다스려낼 정책수단이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살리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그저 과거사를 들먹이거나 마녀사냥식 선악시비로 시종일관하고 만다. 이것이 바로 중남미화의 3단계로서 부가가치 없는 포퓰리즘 정치의 슬픈 모습이다. 이에 주주이익 극대화의 포로가 된 국민경제를 살려낼 대안정책의 모색이 시급히 요구된다. 특히 외자 지배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된 은행권과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협을 받기에 이른 재벌기업에 대해 각기 ‘금융의 공공성’과 ‘자본의 국적성’에 입각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은행이 됐건 재벌이 됐건 그들의 이윤추구 행위가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의 발전과 안정에 기여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은행은 100% 로컬산업으로서 국민경제와 사활을 함께하므로 누가 소유하고 있건 당연히 소정의 공공성 규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함으로써 다스려야 한다. 이 점에 관한 한 외자계 은행도 예외일 수 없다. 한편 재벌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창출한 이익의 상당 부분을 국내에서의 적극적인 재투자로 연결 짓는다는 전제조건하에서 외국주주자본의 집합적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소유ㆍ지배구조의 안정화를 고려할 수 있다. 이는 개방화ㆍ자유화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국민경제 안정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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