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盧 前대통령 국민장] 숫자로 본 국민장 7일

분향소 300곳·조문객 430만 사상 최대<br>영정앞 국화꽃 송이 500,000<br>하루에 사용된 생수 100,000<br>사상최다 장의위원 1,383

지난 23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했다. 그는 짧지만 선명한 내용을 담은 유서에서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훌쩍 떠나버린 그에 대한 원망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합동 분향소가 차려진 봉하마을에는 100만명이 넘는 조문객이 다녀갔고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를 비롯한 전국에 마련된 300여개의 분향소에는 400만명이 넘는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전례 없는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기록들을 남겼다. 그가 서거한 23일부터 영결식이 거행된 29일까지 온 나라가 애도의 물결 속에 잠겼던 지난 7일간의 기록들을 돌아봤다. ◇끊이지 않는 추모의 물결=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전해진 23일 오후. 서울 대한문 앞에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모인 시민들은 대한문 주변에 임시분향소를 차리고 자발적으로 상주가 돼 조문객을 맞았다. 분향소 주변 천막 설치를 두고 경찰과 한때 물리적 충돌도 있었지만 대한문 앞 임시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을 막지는 못했다. 7일간 끊이지 않았던 국민의 추모 물결의 시작을 알린 셈이다. 서거 이틀째인 24일에는 봉하마을에도 공식 분향소가 설치돼 본격적으로 조문객을 받기 시작했다.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은 영결식 하루 전인 28일 밤 최고조에 달해 100만명을 돌파했고 전국 300여곳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인원도 430만명을 넘었다. 이 같은 조문객 수는 올해 초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을 애도하기 위해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조문객(40만여명)보다 많고 최다 조문객 수로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장(1979년) 당시의 조문객 수 200만명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영정 앞에 높인 국화 50만송이, 자원봉사도 줄이어=국민장기간 동안 고(故) 노 전 대통령 공식 분향소가 설치된 봉하마을에서는 국화 20만여송이가 사용됐다. 7일장으로 치러진데다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한 송이 국화를 5번 정도 재사용했다. 조문객이 직접 들고 온 것과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에서 준비한 것을 합치면 장례기간 동안 사용된 국화는 50만송이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7일 동안 끊이지 않은 조문객들을 위해 쇠고기국밥 재료로 하루 평균 쌀 1만㎏과 쇠고기 800㎏이 소비됐고 하루 평균 생수 10만개, 우유 5만개, 빵 7만개 등이 소모됐다. 하루 평균 수박은 800~900통, 라면은 6,000개가 소비됐고 일회용 수저는 하루에 10만~12만개가 사용됐다. 고(故)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만장은 1,700여개가 사용됐다. 원활한 조문을 위해 자원봉사도 줄을 이었다. 김해 봉하마을에는 노사모와 김해시 자원봉사회, 대한적십자사 김해지회, 김해시 새마을 부녀회 소속 1,000여명이 자원봉사를 했다. 이들은 주변 청소, 음식 장만, 설거지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청소를 위해 7일 동안 사용된 쓰레기봉투는 50리터짜리ㆍ120리터짜리 1만2,000여개나 됐다. ◇사상 최대 1,383명으로 장의위원회 구성, 취재 열기도 뜨거워=고(故)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준비하는 장의위원회는 사상 최대 규모로 구성됐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공동장의위원장을 맡았고 입법ㆍ사법ㆍ행정 등 3부의 전ㆍ현직 공무원 1,010명과 학계ㆍ재개ㆍ종교계ㆍ언론계 등 사회 지도층 인사 262명, 유족 관련 인사 111명 등 총 1,383명으로 장의위원회가 구성됐다. 박 전 대통령 국장 당시 장의위원은 691명이었고 최규하 전 대통령 국민장 때는 680명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내외신 기자들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봉하마을과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경남경찰청 등에는 하루 평균 600여명의 취재진이 모였고 23일 이후 봉하마을을 한번이라도 찾은 내외신 기자들은 합치면 1,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취재진이 몰리면서 봉하마을 인근 숙소에는 빈방을 찾을 수 없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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