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국민들의 비자 발급을 간소화하라."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무부에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 브라질인들이 미국에서 '싹쓸이 쇼핑'에 나서며 미국의 경제회복에 일조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브라질 경제가 수년째 호황을 누리면서 헤알화 가치가 급등하자 미국 등 해외 쇼핑 원정에 나서는 브라질 국민들이 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브라질인의 해외 소비는 지난해 사상최고치인 212억달러(약 24조원)를 기록했다. AP통신은 지난 2010년 미국을 방문한 해외 관광객의 1인당 지출액에서 브라질이 1위를 차지했으며 브라질인이 지출한 금액은 총 59억달러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세계경제의 맹주로 급부상한 브라질의 삼바파워를 보여주는 일례에 불과하다. 브라질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영국을 제치고 세계 6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영국 경제정보 평가기관인 EIU에 따르면 올해는 2조6,280억달러의 GDP를 달성해 프랑스를 제치고 5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최소한 신흥시장에서는 미국ㆍ중국에 이은 막강한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이 같은 경제력을 등에 업고 글로벌 경제 및 정치ㆍ외교 분야에서도 브라질의 힘자랑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WB) 총재가 오는 6월 말 사퇴할 것으로 알려지자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신흥국에서 WB 총재가 나올 때가 됐다"고 말했다. WB 총재를 미국인이 독식하고 모든 국제기구의 수장을 선진국들이 나눠 차지하는 관행에 공식적으로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브라질은 선진국과의 환율ㆍ통상분쟁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다. 2010년 '환율전쟁'을 선포한 데 이어 올 들어 '2차 환율전쟁'에 나설 태세다. 지난달 이후 해외차입 달러화에 대한 과세기준 강화,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매입, 금리인하 등 카드를 총동원해 헤알화 가치의 급격한 상승을 저지하고 나섰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선진국들이 경기회복을 위해 금융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브라질 등 신흥국의 통화가치를 지나치게 높였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세계 2위 대국으로 떠오른 중국과도 휴대폰ㆍ섬유ㆍ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통상분쟁을 벌이고 있다. 브라질은 연초 중국산 휴대폰이 덤핑 가격으로 수입돼 자국 업체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자체조사 후 수입규제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지난해에는 중국산 원단과 의류에 대한 덤핑 의혹도 제기하면서 수입규제 방침을 발표했으며 자국 자동차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차에 대한 세금을 대폭 올리면서 중국 업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국제외교에서도 브라질은 미국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미국 외교정책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는 지난해 7월 보고서에서 "미국은 브라질을 중남미 지역이 아니라 글로벌 강대국으로 인식해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브라질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공식 지지하고 비자 면제 대상국에 브라질을 포함할 것을 권고했다.
리처드 하스 CFR 회장은 최근 브라질을 방문해 "브라질이 국제무대에서의 역할을 제고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은 G2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브라질을 중시하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분석된다.
브라질의 오는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하계올림픽 개최 역시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 유치에 국제정치와 외교의 역학이 숨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달라진 브라질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