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2일] 포클랜드 전쟁


1982년 4월2일 새벽, 포클랜드가 총성에 휩싸였다. 아르헨티나군 2,000여명의 기습을 받은 영국군 80여명은 8시간 만에 대영제국의 깃발을 내렸다. 독립 이래 166년 동안 코앞의 섬을 영국에 내줘야 했던 아르헨티나는 감격에 젖었다.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시위도 자취를 감췄다. 영토분쟁을 통해 정치적 불만을 잠재우려던 대통령 갈라티에 장군은 ‘영국이 지구 반대편의 쓸모없는 섬을 위해 전쟁에 나설 턱이 없다’며 자신했지만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주요 전투함정의 3분의2를 긁어 모아 포클랜드제도로 보낸 영국은 최신 무기와 미국 인공위성의 정보 제공에 힘입어 75일 만에 승리를 따냈다. 덕분에 마거릿 대처는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1990년까지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프랑스도 휘파람을 불었다. 아르헨티나의 프랑스제 전투기가 발사한 11만파운드짜리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 한방에 영국이 2,329만파운드를 들여 건조한 최신예 구축함 셰필드호가 가라앉자 무기구매 요청이 쏟아졌다. 반면 패전은 아르헨티나 군정을 무너뜨렸다. 미국이 미주상호조약을 어겨가며 영국 편에 섰다는 배신감에 남미 전역에서 반미감정도 넓게 퍼졌다. 정작 영국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근본요인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유층과 지도층 자제는 징병을 기피했던 아르헨티나와 달리 영국에서는 앤드루 왕자까지 헬기 조종사로 참전, 대함 미사일을 가짜 표적으로 유도하는 극히 위험한 임무를 맡았다. 아르헨티나가 말비나스로 부르는 포클랜드제도를 영국은 영유할 수 있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도 수입되는 오징어를 비롯한 어족자원이 풍부한데다 북해유전보다 큰 원유와 천연가스까지 매장돼 있기 때문이다. 포클랜드는 자원확보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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