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명품 장수기업 키우자] <3> 대 끊기는 한국 기업

창업세대 은퇴 앞둬 현상유지 급급

전문 경영인 영입 통해 폐업 막아야

코스닥 CEO 평균 55세인데 가업승계 꺼리는 2세 많아져

사전에 장기 플랜 마련 필요

한정화(왼쪽 여섯 번째) 중소기업청장과 업계 대표, 학계 전문가들이 지난 3월 열린 명품 장수기업 전문가 간담회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중소기업청

#일본의 한 금속가공업체는 사장이 80세를 넘었지만 자녀 중 누구도 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사장은 결국 지난해 폐업이라는 결단을 내렸고 수십 명의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됐다.

100년 장수기업이 2만개에 달하는 일본이지만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일본 신용조사회사 TSR에 따르면 이 같은 사례는 지난해 약 3만 건으로 10년 전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났다. 이로 인해 사라지는 일본의 일자리는 많게는 35만개에 달한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데이코쿠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1980년 52세였던 전국 기업체 사장의 평균 연령은 현재 59세 안팎으로 높아진 상태다.

이러한 문제는 중견ㆍ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고령화 시대를 맞이한 우리나라에도 현실로 다가왔다. 4일 코스닥협회에 따르면 올해 코스닥 CEO의 평균연령은 55세로 지난해 보다 0.4세 늘었다. 50대가 48%로 가장 많았고 60대도 18.3%나 됐다. 정재훈 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은 "대한민국의 경제기반을 다진 1세대 창업 세대의 은퇴 시기가 도래하면서 세대교체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에선 2세가 가업 승계를 꺼리면서 원활한 세대 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 중소기업 A사 사장은 칠순이 눈앞이지만 아직도 영업부터 기술, 재무 등 회사의 핵심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자식은 해외에서 MBA까지 마친 후 전문직으로 일하는 삶에 만족하고 있다. 가족보다 회사를 우선시하며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다. 신상철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2세들은 아버지 세대의 도전 정신은 사라지고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외국에서 오래 공부를 하고 돌아오면 지분을 팔아 돈으로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분야에서 키운 전문성이 역설적이게도 '중소기업 승계 리스크'로 작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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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열렸지만 중견기업의 평균 업력은 22년, 중소기업은 10.8년에 불과하다. 물론 2세로의 가업승계가 명문 장수기업으로 가는 필수 코스는 아니다. 다만 기업이 갖고 있는 핵심 기술과 일자리,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자녀가 최적으로 꼽히는 측면이 크다. 자동차 부품업체 오토젠의 이연배 회장은 운이 좋은 케이스다. 전혀 뜻이 없던 아들(조홍신 사장)이 IMF를 계기로 파산 위기에 몰렸던 회사에 합류하게 됐기 때문. 이 회장은 "대우사태가 터진 후 다급해서 데려온 아들은 2~3년간 아예 집에도 들어오지 않으며 용접, 프레스 등 생산라인에서 직접 뛰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가업을 이어주려는 생각이 처음에는 없었고 원래 아들이 하고자 했던 분야도 따로 있었지만 책임과 주인의식을 갖고 회사 일을 하면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2세로의 승계가 힘든 상황인 경우 직원 내부승진, 전문경영인 영입으로 새로운 CEO를 맞이하거나 매각을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전문가들은 어떤 길을 택하던 사전에 장기 플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후계자 부재로 경영자의 고령화가 지속될 경우 투자 위축과 연구개발(R&D) 부진 등 본연의 기업가정신이 후퇴하고 현상유지에 만족할 가능성이 농후한 탓이다. IBK경제연구소에 따르면 CEO가 고령화된 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비용은 0.80%으로 일반기업(1.36%)에 비해현 저히 떨어졌다. 일반 기업의 고용증가율은 2.47%인 반면 고용증가율도 -0.03%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5대째 사장을 맡고 있는 독일 히든챔피언 글라스바우 한의 이자벨 한 대표는 "후계자가 실력이 있고 의지가 있다면 타인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낫다"며 "경영 의지를 갖고 있는 후계자가 직접 자신의 뜻을 적극 나타낼 필요가 있으며 특히 너무 늦지 않은 시점으로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우리 문화는 창업자가 끝까지 자리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식을 못 미더워하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그러다 보니 갑작스럽게 대표가 사망하거나 건강이 악화되면 회사 역시 급격히 어려워지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2대 기업인인 폐기물처리업체 NC울산의 강경진 대표는 "사전 승계에 대해 언급하면 죽기를 바라냐고 역정을 내는 식으로 정서상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며 "회계사가 찾아갔다 뺨 맞고 나올 정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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