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일등공신이다.
재계의 힘을 발휘한 이들의 행진은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이룬 역사적 쾌거로만 멈추지 않는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또다시 대장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 3인방은 지난 4년간 지구 31바퀴를 도는 강행군을 펼쳐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기념비적 업적을 이뤄냈다. 수십년 동안 기업 경영에서 갈고닦은 통찰력과 지혜ㆍ네트워크를 적극 활용, 평창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이들은 여세를 몰아 '주마가편(走馬加鞭)'의 각오로 재계의 지원을 선도하며 세계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성공적인 동계올림픽 개최에 온 힘을 쏟을 예정이다.
지난 6일(현지시각) 남아공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펴응창!"을 외치는 순간 벌떡 일어나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이 회장은 "앞으로 범국민적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 아시아 동계 스포츠 발전에 기여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며 "잘 준비될 수 있도록 계속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 역시 "2년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가 좋아서 기쁘다"며 "이런 기분으로 오는 2018년까지 우리의 노고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재계 총수 3인방은 국격을 높일 동계올림픽 개최를 국운 융성의 계기로 만든다는 방침 아래 경제계가 할 수 있는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으기 위한 전략 마련에도 나섰다. 이를 통해 삼성ㆍ대한항공ㆍ두산그룹은 물론 재계 차원의 '올림픽 특수' 대책을 만들어 한국 기업과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을 계획이다. 더반의 벅찬 감격을 한국 경제의 도약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주사위를 던진 것이다.
◇이 회장, 모든 IOC 위원 감동시켜="모든 일정을 취소하라." 최근 삼성 비서실에 이 회장의 특별 지시가 떨어졌다. 모 IOC 위원이 국제행사 때문에 한국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회장이 즉각 내린 구두명령이다. 이 회장은 IOC 위원이 한국에 오면 모든 선약과 일정을 뒤로 하고 IOC 위원을 만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럽ㆍ캐나다ㆍ멕시코 등 올림픽이나 관련 국제행사가 열리는 곳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스포츠 외교를 펼쳤다. 이 회장은 총 110명인 IOC 위원 대부분을 직접 만나 평창 지지를 호소했다. 이를 위해 그는 IOC 공식 행사장에서 점심과 저녁은 물론 잠시의 휴식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IOC 위원과의 면담 일정으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이 회장은 IOC 행사장에서 저녁을 약속했던 IOC 위원이 다른 일정이 늦어져 약속을 취소해야겠다고 연락해오자 "늦어도 좋다. 기다리겠다"고 답변한 뒤 1시간 반 넘게 기다린 끝에 IOC 위원을 만나기도 했다. 또 IOC 위원과의 식사 자리에는 항상 해당 IOC 위원의 이름이 새겨진 냅킨을 미리 준비해 테이블에 놓아 감동을 줬다.
이처럼 이 회장이 칠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칠 줄 모르는 유치 활동에 나선 이유는 무엇보다 두 번의 유치 실패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 총회 결선 투표에서 캐나다 밴쿠버에, 2007년 과테말라에서 열린 IOC 총회 결선 투표에서 러시아 소치에 연속 탈락하자 이 회장은 크게 마음 아파했다는 후문이다.
◇조 회장, 경영 맡기고 전세계 돌아="국가적 대업에 심부름꾼 역할을 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창립총회'에서 조 회장이 밝힌 소감이다.
이 말과 같이 조 회장은 이후 2년 남짓을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대한항공 업무는 지창훈 총괄사장에게 맡기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에 전념한 것. 또 해외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우더라도 의사결정이 원활하도록 총괄사장 이하 각 부사장의 책임경영 체제를 가동시켰다.
조 회장의 유치 활동은 위원장 정식 취임 전부터 시작됐다. 2009년 7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8차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에 참석해 IOC 위원들과 OCA 의장들을 일일이 만났다. 이틀 후에는 대한항공 헬기를 이용해 강원도 평창 올림픽 시설 현장을 방문해 자문을 바탕으로 강점과 약점을 파악했다.
위원장 취임 이후 덴마크ㆍ네덜란드ㆍ모나코ㆍ독일ㆍ스위스 등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관련 총회, 빙상경기대회, IOC집행위원회 등에 빠짐없이 갔다. 또 밴쿠버 동계올림픽, 로잔 테크니컬 브리핑, 런던 스포츠어코드 등 굵직한 국제 스포츠 행사는 물론 오세아니아ㆍ아프리카 올림픽 위원회 정기총회 등 IOC 위원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평창의 우월성을 호소했다.
◇박 회장, 피폭 위험에도 일 IOC위원 찾아=3월 박 회장은 일본 IOC 위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피폭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쿄를 방문했다. 박 회장은 평창이 앞서 도전했던 2010·2014 동계올림픽 유치전 때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겸 IOC 위원으로 유치활동을 이끌었다. 그런 그였기에 이번만큼은 성공하고 싶었다. 평창으로 결정되는 순간 그는 "늦었지만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나니 평생의 한을 푼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2009년 2월 대한체육회장에 취임한 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많은 열정과 시간을 쏟아부었다. 평창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IOC 위원이 한 명이라도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올 들어서는 지난 6개월의 절반을 해외에서 지냈다. 그는 본인의 해외출장비를 대한체육회(KOC) 예산이 아닌 사비로 지출해 부족한 KOC유치활동비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특히 박 회장은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는 국제 체육기구 및 스포츠 행사에 모두 참석, IOC 위원의 90% 이상을 만났다. 또 IOC 위원을 보유한 국가의 NOC 위원장과 해당 부처 장관 등 자국 IOC 위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체육계 주요 인사를 만나 평창 지지를 요청했다.
또 국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종목별 국제대회에 오는 IOC 위원, 국제연맹회장 등을 대상으로 오찬ㆍ만찬 행사를 열어 평창을 홍보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지난달부터는 IOC 위원을 단 한번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두산 지사에 짐을 풀고 거의 하루에 한나라를 방문하는 강행군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