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2월 16일] 지도층의 솔선수범

짧았던 설 연휴가 끝났다. 필자는 명절만 되면 지난 2003년 추석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 난다. 2003년 9월 추석 무렵, 한반도에 엄청난 피해를 안긴 태풍 매미가 우리나라를 강타한 것이다. 필자는 명절 전날에야 일기예보를 접하고 태풍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1959년 9월 발생한 태풍 사라와 경로도 비슷했고 그보다 더욱 강력한 규모의 태풍이었다. 게다가 태풍의 중심권이 필자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통영을 관통한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본가에 차례상을 모셔놓고 서둘러 통영으로 내려왔다. 서울 등지에 명절을 쇠러 간 사람들을 제외하고 고향이 가까운 임원 등 간부들과 협력사 사장들을 회사로 불렀다. 우리는 밤을 꼬박 새며 물건들이 떠내려가지 않게 장비도 설치하고 자료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펼쳤다. 9월12일 오후 8시40분께 드디어 태풍이 몰려왔다. 집채만한 해일이 우리가 머물던 4층 건물을 덮쳤다. 순식간에 지붕이 날아갔고 바닥은 바닷물로 흥건해졌다.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우리는 태풍과의 사투를 벌였다. 바람에 맥없이 휘어지는 문과 철판표면처리장(Blasting Cell) 물막이를 사람의 몸으로 막아내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태풍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고 밤하늘이 맑게 갰다. 이틀 간의 밤샘작업 동안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다들 굳건히 회사를 지켜냈다. 다들 힘겨운 위험을 함께 잘 이겨낸 자축의 의미로 명절용 술을 밤새 나눠 마셨다. 물이 고인 바닥에 둘러앉아 독하든 안 독하든 비싸든 비싸지 않든 상관없이 다들 나눠 마시는데 그때만큼 그렇게 술이 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 피곤할 법도 했을 텐데 그날따라 취하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 즐겁게 회포를 풀었다. 다음날 현장정비에 나섰다. 회사 주변은 온통 쑥대밭이 됐지만 정작 우리 회사의 피해 정도는 그리 크지 않았다.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지켜낸 힘이었으리라. 우리는 바닥만 정리한 후 그날 바로 정상 조업에 들어갔다. 일터로 복귀한 직원들은 위험 속에서 솔선수범해 태풍을 막아낸 임원과 간부들에게 경의를 표했고 이는 그들의 지휘체계를 마음으로 따르는 계기가 됐다. 계층 간 대립을 해결하고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원천은 지도층의 솔선수범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로마가 오랫동안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이 일어나면 목숨 바쳐 선봉에 나서며 전쟁 비용 모두를 지원한 귀족들의 높은 도덕의식 덕분이었다. 대영제국을 이뤄냈던 영국도 왕실은 물론 지도층 자녀 2,000여명이 제1ㆍ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역사가 있다. 이렇게 지도층의 희생과 솔선수범이 있는 나라들은 역사에서나 현실에서 강한 나라가 됐다. 경제나 사회적 위기가 찾아오면 지도층이 앞서 위기 극복의 주체가 돼야 한다. 지도층이 헌신과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게 하는 원천이자 위기 극복의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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