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뒷좌석 안전띠만 매도 교통사고 사망자 연 600명 줄어



뒷자석 착용률 5%도 안돼… 하루 14명 이상 목숨 잃어
OECD중 안전도 거의 꼴찌… 피해 비용도 연 13조 달해
운전 중 DMB 시청 금지… 에코드라이브 실천 등
운전문화 개선 캠페인으로 교통안전 복지 실현할 것


"저는 고속도로는 물론 서울시내에서 차 뒷좌석에 앉을 때도 안전띠를 꼭 맵니다. 우리나라의 뒷좌석 안전띠 착용률은 5%도 안 됩니다. 전 좌석 안전띠 매기만 잘 실천해도 연간 600명 정도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줄어들 것입니다."


정일영(55·사진)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그동안의 노력으로 교통사고가 많이 줄어든 것은 인정하면서도 아직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연간 5,000명에 달한다"며 "지난 1993년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 과장으로 있을 당시의 1만400여명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아직 멀었다"고 한탄했다.

지난해 발생한 자동차사고 건수는 총 22만1,711건이며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5,229명이나 됐다. 하루에도 14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있는 셈이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07년 6,166명 ▦2008년 5,870명 ▦2009년 5,838명 ▦2010년 5,505명 등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워낙 폭이 작아 감소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을 들이밀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이 같은 도로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비용은 2010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약 1.1% 규모인 13조원에 달한다.

정 이사장은 "일본만 해도 연간 사망자 수가 한국의 25% 수준이고 스웨덴이나 영국 등이 늘 1위 자리를 놓고 다툰다"며 "복지 논쟁이 한창이지만 가장 중요한 복지는 교통안전"이라고 강조했다.

차량 대수나 인구 수 등 여러 여건이 다른 상황에서 한 국가의 교통안전 수준은 통상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 측정된다. 부끄럽게도 우리나라는 2.86명(2009년 기준)으로 OECD 평균의 2.4배에 달하며 OECD 32개국 중 30위로 거의 꼴찌나 다름없다. 우리나라보다 사망자 수가 많은 나라는 터키와 슬로바키아뿐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앞장 서서 이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국민 인식과 문화, 관행의 변화가 아니냐고 묻자 정 이사장은 갑자기 책상에서 서류 뭉치를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목소리 톤을 높여 얘기를 이어나갔다.

"가장 중요한 게 의식과 문화라는 말이 맞습니다. 우리나라 교통사고의 90% 이상이 과속, 신호 위반, DMB 시청, 음주운전 등 운전자의 과실이나 잘못된 습관으로 발생합니다. 그런데도 운전자들은 1주일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습관을 반복하니까 교통사고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는 것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정 이사장은 '감히 말씀 드리면'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했다. 국민의 일원으로서 국민을 꾸짖듯 훈계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태도가 배어 있는 표현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그치기보다 국민과 동일한 눈높이에서 함께 변화를 도모하고자 벌이고 있는 활동이 바로 ▦전 좌석 안전띠 매기 ▦운전 중 DMBㆍ휴대폰 사용 금지 ▦에코드라이브 실천 ▦교통약자 배려 등의 내용을 담은 4대 캠페인이다.

공단이 지난해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뒷좌석 안전띠 착용률은 4.51%로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 수와 마찬가지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뒷좌석 안전띠 착용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 인식의 변화가 거의 없어 2009년(4.92%)보다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앞좌석 안전띠 착용률은 73.4%로 그나마 보편화됐지만 이마저도 일본(98%), 독일(96%) 등의 해외 선진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한참 모자란다.

정 이사장은 "5월 제주도에서 발생한 수학여행 버스사고도 안전띠를 맨 학생들은 모두 살았는데 학생들을 인솔하느라 미처 안전띠 착용을 못한 교사만 목숨을 잃지 않았느냐"며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착용시와 비교해 사망률이 세 배나 높기 때문에 모든 좌석에서 안전띠를 착용하는 문화만 자리잡아도 한 해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는 사람 수가 600명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열변은 운전 중 DMB 시청에 대한 얘기로 옮아가서도 계속됐다. 정 이사장은 "DMB 시청으로 운전자가 2초가량 전방 주시를 못하면 110m 길이 축구장의 절반을 눈 감고 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오늘 오후에 한 방송사에 라디오 녹음을 하러 가는데 이런 내용을 집중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재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운전 중 DMB 시청을 할 경우 최고 7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에코드라이브 실천 역시 안전띠 매기와 DMB 시청 금지와 마찬가지로 공단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정 이사장은 "급제동ㆍ급출발ㆍ급가속을 하지 않고 경제속도(일반도로 시속 60~80㎞, 고속도로 시속 90~100㎞)를 준수하면 에코드라이브를 실천하는 것"이라며 "여기에다 불필요한 짐을 빼내 트렁크를 비우는 노력까지 더해지면 최대 20%가량 연료 절감을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좀처럼 바뀔 기미가 안 보이는 고유가 시대에 생명ㆍ환경ㆍ경제를 동시에 살리는 1석3조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정 이사장의 설명이다.


큰 목소리로 열변을 쏟아내던 정 이사장은 자동차 급발진 얘기가 나오자 다소 조심스러워졌다. 최근 일어난 두 건의 급발진사고에 대한 국토부ㆍ교통안전공단의 조사 결과가 30일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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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이사장은 "국내 완성차업체들은 소비자 서비스 차원에서 2008년 이후 신규 모델로 생산되는 차량에 한해 사고기록장치(EDR)를 장착하고 있다"며 "30일 결과가 발표되는 두 건 중 한 건은 이 장치를 분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 장치에는 급발진이 일어난 순간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여부가 기록돼 있는데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던 것으로 판명될 경우 제작 결함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고 당시 운전자의 발이 브레이크를 찍어 누르고 있었음이 확인되면 공단의 자동차안전연구원 16명이 포함된 21명의 합동조사반이 다시금 이 사고가 특정 차량의 문제인지 아니면 전체 모델의 일반적 결함인지에 관한 분석에 착수한다.

EDR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식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며 EDR가 장착되지 않은 나머지 차량은 전자제어장치(ECU)ㆍ블랙박스ㆍCCTV 등에 의존해 분석이 이뤄진다.

정 이사장은 "2010년 미 항공우주국(NASA)이 정부 의뢰로 도요타 차량에 대해 10개월간 조사를 진행했지만 자동차의 오작동으로 인한 급발진이 아니었다고 결론을 냈다"며 "국민들이 보내는 의혹의 눈초리와 산업계에 미칠 어마어마한 파장을 생각하면 결론이 이렇게 나와도 걱정, 저렇게 나와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우리 공단의 관장 분야가 넓다'는 정 이사장의 말처럼 공단은 철도사고 예방을 위한 업무도 수행 중이다.

찜통더위에 돌연 KTX가 터널 안에 1시간 동안 갇히는가 하면 열차의 객차가 분리되는 등 어이없는 사고가 속출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 이사장은 "우선 투자를 통해 낡은 부품을 빨리 교체해야 하고 두번째로 열차를 조작하고 운전하는 분들이 조금 더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자동차 급발진, 에코드라이브 등의 얘기로 잠시 샛길로도 빠지고 우회로를 돌기도 했지만 안전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다시 안전으로 마무리됐다. 정 이사장과의 인터뷰처럼 앞좌석의 운전자와 뒷좌석의 승객이 함께 안전띠를 매는 '수미쌍응'의 조화가 이뤄진다면 우리나라가 교통안전 선진국으로 올라설 그날도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

"묻지 마 칼부림 등으로 어수선한 상황이지만 술 마시고 아무 생각 없이 운전하다가 애꿎은 사람 치어 죽이면 그만큼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습니까. 감히 말씀 드리지만 '급한 문화'만큼 교통사고를 일으키기 좋은 조건이 없습니다. 3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으니 딱 2년 남았습니다. 잘못된 문화를 개선해 교통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경제 규모에 걸맞은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습니다."






정 이사장은 '강남 스타일'

젊은 직원과 소통하려 'CEO 희망편지' 보내고 트위터도 열심히…

나윤석기자

"요즘 유튜브에서 인기가 높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보면 걸그룹과는 전혀 다른 아저씨가 든든한 몸매로 말춤을 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재미'야말로 문화적인 가치를 높이는 것은 물론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이 지난 20일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하늘색 와이셔츠에 깔끔한 남색 슈트를 걸친 '강남 스타일'을 보니 아기자기한 트윗이 이해가 갔다.

정 이사장의 이런 모습은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좇아 떠들썩하게 자기를 알리는 과시와도 무관하고 최신 유행가에 대한 애정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젊은 직원들과의 소통, 그것만이 유일한 목적이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도 하지만 그는 매주 월요일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CEO 희망편지'라는 이름의 직원을 향한 러브레터도 띄운다.

정 이사장은 "벌써 금요일인데 국회에 다녀오고 정신없이 지내느라 다음주 편지를 아직 못 썼다"며 "매주 두 장씩 쓰는 게 쉽지 않은 숙제"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편지는 그의 취임 석 달 후인 지난해 11월 시작해 단 한 주의 어김도 없이 꼬박꼬박 배송됐으며 27일 직원들은 마흔 번째 편지를 읽는다.

자세를 낮춘 소통에 대한 열망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구현된다. 정 이사장은 전국 각지의 직원들과 시간이 날 때마다 산에 올라 막걸리 한 잔 걸치면서 그들의 생각도 듣고 본인의 진솔한 마음도 전하고는 한다.

정 이사장은 "시스템이나 규정은 내가 바꿔도 후임 이사장이 언제든지 또 바꿔버릴 수 있지만 문화와 관행은 한번 변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이 건넨 '계속 리피트(반복)해라, 변화와 혁신은 원래 어려우니까'라는 조언을 가슴에 새기고 전진 중이다.

정 이사장의 임기가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은 상황에서 2년 뒤면 우리는 그의 노력이 조직 혁신으로, 국민 안전으로 결실을 맺는 모습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때 아마도 그는 어디선가 말춤을 추며 '강남 스타일'을 흥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약력

▦1957년 충남 보령 ▦1979년 행정고시 합격(제23회) ▦1980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8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1988년 영국 옥스퍼드대 석사 ▦1997년 영국 리즈대 박사 ▦1997년 건설교통부 고속철도과장 ▦2005년 해양수산부 안전관리관 ▦2006년 건설교통부 홍보관리관 ▦2008년 국토해양부 항공철도국장 ▦2009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 ▦2010년 국토부 교통정책실장 ▦2011년~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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