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한국경제 복합불황 덫에 걸리나] 활력 잃은 기업

경기 부진한데 환율 하락·세무조사까지…<br>"직원 휴가보내 인건비라도 줄여야 할 판"

신규 투자 못나서고 리스크 관리에 역점

정책 불확실성 제거… 기업 숨통 틔워줘야


대구에서 자동차와 산업용 고무부품을 생산하는 보성인더스의 정창윤 대표는 최근 환율 하락과 판매 부진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포르투갈발(發) 금융불안으로 원·달러 환율이 1,020원 가까이 다시 오르기는 했지만 연초 예상환율인 달러당 1,070원과는 너무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수출물량은 줄고 채산성마저 나빠져 신규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직원들 여름휴가를 앞당겨 보내 인건비라도 줄여야 할 판이다.

정 대표는 "환율 하락폭이 너무 커 대책 자체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며 "수출이 줄면서 실적도 나빠져 직원들의 여름휴가를 앞당겨 길게 보낼 생각"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경기도 용인에서 치과 교정재료를 만들어 수출하는 A사 최모 대표의 고민은 더 심각하다. 생산시설을 운영할 최소한의 사람만 있는데 여기서 사람을 더 줄여야 하니 가슴만 타들어간다. 최 대표는 "수출 채산성이 맞지 않아 수출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25% 수준의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기업들이 갈수록 활력을 잃고 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내수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수출마저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마저 가파르게 떨어져 채산성을 맞추기 힘든데 세수 확보를 위한 당국의 세무조사도 강화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툭하면 중소기업· 대기업 가릴 것 없이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세수부족보다 기업의 생존력 자체가 약화되고 있는 게 더 심각한 문제인데 이를 너무 소홀히 하는 것 같다"고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먼저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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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들의 실적도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지난 2·4분기 영업이익이 7조2,000억원에 그치면서 '어닝쇼크'를 야기한 삼성전자뿐 아니라 이달 중으로 2·4분기 실적을 발표할 현대자동차 등 다른 기업들도 우울한 성적표를 내놓을 것으로 우려된다. 정유업계는 적자 비상에 걸릴 상황이다.

여기에 동부·효성·현대·한진 등 상당수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개선을 해야 할 처지고 SK·한화 등은 총수 부재로 의사결정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재계의 맏형 역할을 해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두 달째 입원치료 중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들의 경기회복세가 주춤하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에 따란 정치적 혼란 상황에서 세계 경기회복세 둔화, 환율 하락, 그리고 재계의 구심점 상실 등으로 기업마다 공격적인 투자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달 초 자산 상위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실시한 '하반기 중점 경영전략' 설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30대 그룹 가운데 환율변동 등 경영 위험관리를 하반기 중점전략으로 삼겠다고 응답한 그룹은 전체의 40%인 12곳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사업 구조조정을 포함한 경영 내실화에 주력하겠다는 응답으로 11개 그룹(36.6%)이 이를 선택했다. 반면 연구개발(R&D) 투자 등 성장잠재력 확충을 꼽은 그룹은 단 2곳에 불과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중국의 성장세 둔화와 일감 몰아주기 같은 경제민주화 이슈, 통상임금을 포함한 노동관계 이슈 등이 겹치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커져 신규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투자 환경의 개선이 절실한 만큼 추가경정예산이나 금리 인하를 단행해 정부의 경기회복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기간산업연구실장은 "내수와 수출이 모두 악화하고 있는 것을 감안해 정부가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유도해야 한다"며 "새 경제팀에서 내수경기 부양을 포함해 그동안 기업을 옥죈 정책 불확실성을 가능한 빨리 걷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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