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GM과 크라이슬러를 살리기 위해 174억 달러를 지원키로 한데 자극 받아 그간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온 일본과 영국 및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도 구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 "영국 정부가 자동차 구제안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고든 브라운 총리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바타샤리야 상원의원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영국 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돕지 않으면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구제하지 않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앞서 영국 정부가 금융시장 회생을 위해 마련한 4,000억 파운드 규모의 자금의 일부를 자동차 쪽에 할당하는 방안이 피터 만델슨 산업장관에 의해 마련되고 있다면서 "빠르면 며칠 안에 저리 대출이 발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의 한 해 자동차 생산량은 170만대로 영국 수출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과 내수시장의 극심한 부진으로 대표 브랜드인 랜드로버와 재규어를 인수한 인도의 타타자동차는 영국정부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상태다.
자동차제조딜러협회(SMMT)의 폴 에버릿 회장은 "금융 지원 등 신속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으면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고 영국 재계를 대표하는 영국산업연맹(CBI)도 "자동차 산업 종사자 80만명의 일자리가 위협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은 자동차 산업 지원에 더욱 적극적이다. EU 순회의장국인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16일 유럽의회 연설에서"유럽의 자동차 업체들은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미국이 자동차 산업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 사르코지 대통령은 자국 회사인 르노와 PSA 푸조-시트로앵을 지원하기 위한 세부대책을 마련할 것을 관계부처 장관에게 지시했다. 프랑스는 10년 이상 된 중고차를 강화된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에 맞춰 제작된 차로 교체할 때 최고 1,000 유로를 지원해주고 있다.
독일의 경우도 자동차업계 지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폴크스바겐이 이미 정부에 100억 유로 이상(약 140억 달러)의 긴급 지원을 요청했으며, 정부는 대출 보증과 현금 유동성 제고를 위한 40억~50억 유로의 지원을 검토중이라고 시사잡지 슈피겔이 전했다.
AFP는 또 다른 자동차 메이커인 BMW와 다임러가 정부의 대출 보증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은 자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구제에 나설 움직임이다. 아사히(朝日) 신문은 20일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경제산업상을 인용해 "일본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이외에도 집권 자민당이 환경차 보급 확대를 위해 2,100억엔 규모의 감세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계 각 국의 이 같은 자동차 산업 지원 움직임에 대해 보호주의 강화에 따른 무역 마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경영 악화를 보전해 주기 위해 각 국이 자국 업체 지원에 나선다면 경쟁력 우위를 바탕으로 한 자유무역은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 증권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最近 경기침체와 엔고 속에서 일본 자동차 업체 역시 유례없는 타격을 입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아무런 제한 조건 없이 각 국이 자국업체를 지원한다면 경쟁조건을 크게 왜곡하고 국제 통상 무대에서 보호주의가 번질 가능성이 크다"며 경계감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