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19일] <1399> 신발산업


1885년 5월19일, 매사추세츠 남부도시 린(lynn). 창고를 개조한 허름한 공장 한 곳에서 구두를 쏟아냈다. 직원이라고는 단 두 명. 장인이 10시간 동안 일해 구두 50켤레의 위창과 아래창을 꿰맸지만 비숙련공 둘이서 기계를 이용해 같은 시간 동안 700켤레를 꿰매냈다. 덕분에 수작업에 의존하던 구두 생산이 자동화하고 신발산업이 생겼다. 새로운 기계의 발명자는 잰 어네스트 마첼리거(Jan Ernst Matzeliger). 네덜란드령 기아나(오늘날 수리남)에서 1852년 흑백 혼혈로 태어난 그는 기계를 다루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며 자랐다. 모험을 좇기 위해 19세부터 2년간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던 그는 잠시 머물 생각이었던 미국에 눌러앉았다. 흑인사회의 환대와 발명의욕 때문이다. 구두공장의 재봉기계를 고치는 기술자로 들어간 그는 바로 개량에 매달렸다. 낮에는 연구하고 밤에는 영어를 배운 지 8년 만인 1883년, 구두 공정의 마무리 기계로 특허를 따냈다. 새로운 기계는 놀라운 성능을 보였다. 하루에 최소 150켤레에서 최대 700켤레까지 구두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발명에 성공해 돈방석에 오른 마첼리거는 결핵에 걸려 1889년 37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발명품은 세상에 남아 인간의 삶을 변화시켰다. 기계화가 불가능하다던 구두 생산의 자동화로 월급과 맞먹었던 가격이 내려갔다. 평생의 소장품이었던 구두는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소모품으로 바뀌었다. 마첼리거가 개척한 신발산업의 국내시장 규모는 4조원. 2,200억달러가 넘는 세계 신발시장의 절반 이상을 중국이 점유하고 있다. ‘신발왕국’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국내업체들의 신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마첼리거와 같은 성과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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