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제재 관련 법규를 그대로 따를 경우 해임권고를 해야 하지만 당국 입장에서는 사퇴압박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열쇠를 쥔 사외이사들에게 운신의 폭을 최대한 넓혀주는 정치적 셈법에 따라 직무정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는 서울경제신문이 12일 금융위원회 임시회의에 참석한 일부 위원들을 대상으로 직무정지를 결정한 배경에 대해 통화한 결과에서 나타났다.
복수의 금융위원은 "임원에 대한 제재를 규정한 제재심의 관련 법규에 따르면 임 회장은 해임권고 처분을 받는 것이 맞지만 여러 제반여건을 고려해 직무정지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지적한 제반여건이란 △직무정지 후 뒤따를 KB금융그룹 사외이사들의 행보 △임 회장이 소송전을 선택했을 때 조직이 떠안아야 할 정치적 부담 등을 의미한다.
이 관계자는 "만약 해임권고가 내려졌다면 이것은 대놓고 자리에서 나가라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되면 사외이사들이 느낄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며 "혹시라도 사외이사들이 해임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금융당국과 사외이사 간 갈등이라는 또 다른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이 불복의사를 수차례 공식화한 것을 예단, 조직을 이용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담겼다.
직무정지 처분에 따라 임 회장은 12일 오후6시 이후로 조직과의 연결고리가 사라졌다. 또 다른 금융위원은 "직무정지는 이사 자격 박탈을 의미하는데 이에 따라 변호사 조력 등 조직이 제공할 수 있는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며 "이로써 조직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조직과 금융당국 간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것을 직무정지 판단에 따라 개인과 금융당국 간 싸움으로 축소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이어 "금융위원들은 임 회장의 행위에 위법소지가 다분하고 감독의무 태만 및 중과실 유발 등에 귀책사유가 분명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임 회장이 KB금융그룹의 경영 정상화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금융위원은 "임 회장 본인과 KB의 전체 분위기를 감안해 위원회가 열리기 직전인 (12일)11시까지 자진사퇴할 것을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원회로서는 법대로 할 수밖에 없고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