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잇따라 발표하는 등 급등하는 부동산가격을 잡겠다는 의지를 강력 피력하면서 부동산에 몰리던 시중 부동자금이 증시로 유입될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주식시장이 현재 뚜렷한 매수주체가 부각되지 못한 채 박스권에 갇혀 있는 만큼 부동산 대책에 따른 시중 자금의 향방은 증시의 방향성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23일 종합주가지수는 미 증시 상승과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에 따른 수급개선 기대심리로 전일보다 16.13포인트 오른 611.51포인트로 마감하며 610선에 올라섰다. 하지만 부동산 대책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이날 개인들은 1,740억원을 팔아치웠고 외국인의 매수세도 74억원에 그쳤다. 여전한 관망세다.
1,873억원에 달한 프로그램 매수세가 유일한 지수상승의 힘이었다. 기관도 실제적으로는 200여억원을 팔았지만 이 같은 프로그램 매수세에 힘입어 1,590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따라서 이날 상승세는 부동산 대책에 따른 기대심리보다는 미국 증시의 상승에다 프로그램 매수세가 맞물려 나타난 결과로 분석할 수 있다. 다만 부동산 대책 발표와 함께 개별 종목별로 명암이 엇갈려 주택건설 관련 일부 주택주는 약세로 돌아선 반면 증시회복 기대감으로 증권주는 강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일단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중장기적으로 증시의 수급개선과 투자심리 회복에 도움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자금이 부동산을 이탈해 증시로 몰리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또 일부에서는 인위적인 대책으로 시중 유동성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는 없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중장기적으로 긍정적 효과 기대=400조원에 달하는 부동자금이 부동산에 집중되는 현상이 진정될 경우 증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정부 대책이 당장 실효성을 거둘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정부가 부동산 안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출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주식시장이 기대심리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부동산 안정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함에 따라 투자자들의 관심이 증시로 돌아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셈이기 때문이다. 임송학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부동자금의 흐름을 부동산에서 증시나 실물경제로 돌려 놓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확인했다”며 “최근 정부의 금리인하나 추경예산 편성 등과 함께 주식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단기 영향은 미미할 듯=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중장기적으로 증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대부분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증시가 이번 부동산 대책을 계기로 상승세를 타리라고 기대는 성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임춘수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경제여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되야 증시로 자금이 이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근 주식시장을 이끌만한 주도세력이 없다는 점도 눈치만 보고 있는 자금들의 증시 유입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오는 6월말 카드채 문제가 순조롭게 풀리고 전반적인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야 부동자금의 증시 유턴 현상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대책 효과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일부에서는 이번 부동산 대책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자금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회의론의 배경은 부동산과 증시로 들어오는 자금의 성격이 워낙 다르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부동산은 저금리 기조 아래서 안정성을 중시하는 자금이 주로 들어오는 반면 주식시장은 안정성보다 수익성을 중요시하는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92년 이후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왔는데 이는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는 자금의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따라서 한 군데의 자금수요를 억제한다고 다른 곳의 자금이 원활하게 보충되기를 기대하기는 다소 무리”라고 지적했다.
이동락 현투증권 운용본부장도 “경기가 좋아져 증시가 살아난다는 신호만 주어지면 자금은 자연스럽게 유입될 것”이라며 “이번 부동산대책으로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 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자금의 선순환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재용기자 jy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