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정부조직 개편작업이 막바지에 이르자 폐지 또는 통폐합될 운명에 놓인 일부 부처들이 노조·대학교수 등 민간인을 앞세워 여야 정당이나 언론계에 대한 대대적인 로비에 나서는 등 극도로 혼탁해지고 있다.최근 청와대와 총리실이 지나친 로비를 자제하도록 경고지침까지 내렸으나 일부 부처들은 이에 아랑곳않고 대학교수 수백명이 연대서명한 건의문을 각계에 발송하는 등 발버둥을 치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로비는 이미 지난해말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조직개편을 위한 정부경영진단이 시작되자 정부 각 부처는 진단팀 멤버를 대상으로 치열한 물밑 홍보전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경영진단에 참여한 모컨설팅회사 K씨는 『소속회사의 임원은 물론 초등학교 동기동창들까지 찾아와 진단대상 부처를 잘봐달라고 부탁했다』고 실토했다.
지난 8일 조직개편을 위한 공청회 일정이 잡히자 로비전은 더욱 거세게 전개됐다.
공청회 패널로 참여한 김일수(金逸秀) 고려대 교수는 이날 공청회장에서 『패널참가자 명단이 공개된 뒤 친지들의 전화 공세에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공청회가 끝나자 각 부처의 「폐지 결사반대」 시위는 대중매체로 옮겨졌다.
지난 11일 정부경영진단조정위원회가 건의안을 채택, 공표하자 다음날 주요 일간지에는 일제히 「폐지, 통폐합 반대」 광고가 게재됐다.
이들 광고의 표면적인 주체는 물론 정부부처가 아니다.
지난 12일 3개 일간지에 게재된 「정통부 폐지와 우정사업 분리 반대」 광고는 노동조합이 광고주였다. 같은날 「KAIST, 교육부 이관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광고에는 소속 교수협의회·총동창회·노조는 물론 학생회 이름까지 등장했다.
이후 각 인쇄매체의 기고란을 통해 철도청·중소기업청·기상청 등 각 부처들의 생존논리 홍보가 이어졌고 청와대의 경고조치에도 아랑곳않고 로비전은 거침없이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방향에 관해 총리 주재로 비경제부처 장관간담회가 진행된 지난 17일 무려 176명의 교수들이 연명으로 참가, 정통부 폐지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각 정당과 주요 언론사에 배포했다.
물론 이같은 성명서·광고·기고 등은 참가자들이 정부조직 개편이 갖는 국가적 중대성을 걱정한 나머지 자발적 충정에서 우러나온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의견발표에 참여한 주체들 중 일부는 해당부처의 산하단체장이거나 연구용역 등으로 이해관계가 얽힌 것으로 의심되는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특히 정통부 존치를 주장하는 연대서명에 참여한 교수 중에는 직접 관련이 없는 전공분야의 교수도 수십명 포함돼 있어 일부 교수들이 조직적으로 동원한 게 아니냐는 의혹조차 일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환란 직후 대다수 국민들은 실직·임금삭감 등 뼈를 깎는 고통을 묵묵히 견뎌냈다』며 『정부부문의 구조조정은 민간부문에 비해 아직 새발의 피에 불과한데도 공무원들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고 이렇게 아우성이니 부끄러워 낯을 들 수 없다』고 개탄했다. 【최상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