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7일] 부시 & 고유가


1986년 4월7일 새벽2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파드 국왕과 회담을 마친 조지 부시 미국 부통령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국제유가 안정에 사우디가 적극 나선다는 언질을 받았기 때문이다. 약속을 제대로 이행한 사우디덕에 유가는 오름세로 돌아섰다. 이 대목에서 ‘유가 상승이 안정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실제로 그랬다. 1985년 11월 배럴당 31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폭락세로 돌변해 이듬해 3월 말에는 10달러선에 거래되고 6달러로 팔린 급매물도 나왔던 당시에는 유가 회복이 안정이었다. 급락의 원인은 공급과잉과 경쟁. 영국의 북해유전이 증산에 들어가고 이란과 전쟁을 치르던 이라크가 원유 생산과 수출을 재개해 가격이 떨어지는 와중에 산유국 간 시장쟁탈전이 일어나 유가가 곤두박질쳤다. 유가 속락을 미국 부통령이 저지하고 나선 이유는 미국 석유산업이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값싼 중동산 석유의 유입으로 석유회사들의 고용이 줄어들고 탐사ㆍ채굴 장비도 녹슬어 갔다. 유전이 몰린 서남부지역의 고통이 특히 컸다. ‘저유가 탓에 국가안보가 흔들린다’는 말까지 나돌던 상황에서 부시는 감산과 가격 인상을 주저하는 중동산유국들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입 석유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해 가격상승을 이끌어냈다. 유가는 결국 1980년대 후반까지 배럴당 18달러선을 유지했다. 가격 상승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부시. 석유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오르는 기반을 다졌다. 한국도 혜택을 입었다. 부동산 투기와 무분별한 해외여행ㆍ과소비로 날려 먹었지만 1980년대 중후반의 반짝 무역수지 흑자도 국제 유가 안정 덕분이었다. 과거와 달리 유가는 물론 쌀 수급까지 흔들리는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투기와 달러 과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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