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仁淑(소설가)나무도시락을 기억하는 세대가 있을 것이다. 종이처럼 얇게 접힌 그것의 네 귀를 탁탁 펴서, 그 안에 김밥을 담고 조심스레 두껑을 닫아 소풍을 떠나던 기억. 노란 나무결 무늬가 그대로 살아있던, 그러나 종이장보다도 더 얇게 여겨지던 나무도시락. 바로 그 나무도시락이 내 기억속의 최초의 일회용품이다. 때로는 한번 쓰고 버린다는게 도무지 아까워 잘 접어 도로 가지고 오기도 했지만, 두번 이상 쓴다는건 도무지 불가능한 구조의 물건이었을 것이다.
일회용품을 한번 쓰고 버린다는게 아무래도 사치처럼 여겨졌던 시절도 있었던 것같다. 종이컵을 씻어서 몇번이나 다시 쓰고, 나무젓가락도 씻어서 다시 썼으니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일회용 제품들이야 말할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사실 일회용품이라기보다는 반영구제품이라고 말하는게 옳았을 것이다. 일회용품의 사용이 환경공해를 유발하는 물건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 아직 무엇이든 아껴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가난했던 시절의 일들이다.
최근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적으로 규제한다는 정부방침에 대해 찬반양론이 분분한 모양이다. 지나친 일회용품의 사용이 심각한 환경문제를 유발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해야한다는 것이 오래된 과거의 일처럼, 경제적인 문제라로 여기는 사람도 물론 없을 것이다. 반대입장에 서있는 사람들도, 실은 전면적인 반대라기보다는 그러한 정책이 너무 대책없이 시행되는 것에 대해 난감함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같다. 사실, 용기회수가 도무지 불가능한 종류의 일들을 하는 업자들에게 당장 일회용품 사용을 중지하라고 하는 것은 신통한 대책이 생길 때까지는 생업을 중단하라고 말하는 소리나 같다.
아무리 아름다운 취지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무대책한 시행은 난감하다. 난감한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생사가 달린 일이기까지 하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는 당장으로서는 업무가 불가능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일회용품을 만드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 중의 어느 누구도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해 일회용품 사용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그들을 생각해야할 때라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자신과 가족 전체의 생사가 달린 일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