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27일] 곰퍼스

[오늘의 경제소사/1월27일] 곰퍼스 권홍우 편집위원 '미국 노사관계 안정의 공로자' '원조 귀족노조'. 새뮤얼 곰퍼스(Samuel Gompers)에 대한 상반된 평가다. 곰퍼스는 미국 노동운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지금도 세계 최대 노조인 미국산별노조총연맹(AFL-CIO)의 모태를 만들어 37년간 위원장을 지냈다. 1850년 1월27일 런던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곰퍼스는 열살 때부터 부친의 담배제조업을 거들었다. 노동운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열네살. 미국으로 이민한 직후다. 조숙했는지 17세에 결혼하고 이듬해 아이를 낳은 곰퍼스는 24세부터 연초공장 노조위원장을 맡으며 노동운동 일선에 나섰다. 강성노조를 조직하고 노동 이론을 공부하던 그는 1881년 지역노조 통합에 이어 1886년에는 미국노동총연맹(AFL)을 결성, 위원장을 맡았다. AFL의 태동은 대규모 집회에서 괴한이 던진 폭발물에 경찰과 노동자들이 사망한 '헤이마켓' 사건 직후. 사건의 배후에 자본가들이 개입됐다는 점이 밝혀지기 전이어서 노동운동이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 봉착한 곰퍼스는 이전과 다른 길을 걸었다. 정치ㆍ사회개혁 요구는 배제하고 노동시간 단축, 급여 인상, 단체교섭권 확보에만 주력한 것. 노조원 자격도 백인숙련공으로 제한했다. 흑인과 중국인 고용을 막으려고 파업을 벌인 적도 있다. '숙련공에게 돈만 많이 주면 된다'는 운동방향을 핵심기술인력들은 쌍수를 들어 반겼다. 안식년(1895년)을 제외하고 창립부터 사망할 때까지 종신위원장을 지낸 것도 이 덕분이다. 초장기 집권 속에 곰퍼스의 힘은 1차대전 중 전시산업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을 만큼 커졌다. 곰퍼스의 영향력은 미국 노동운동의 온건성향 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집단이기주의 속에 노조의 기득권만을 챙겼다는 비판이 상존하지만. 입력시간 : 2007/01/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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