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이 결국 '달러당 1,100원'마저 뚫고 내려갔다. 강력한 '벽'이자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1,100원선이 무너지면서 환율은 당분간 하방 압력을 더욱 거세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의 하향 곡선이 미국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동시다발적 양적완화와 이에 따른 신흥국 간 '환율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당국은 우리나라가 '신(新)환율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비상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기업들 역시 저환율 곡선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 내년 전략의 전면수정 작업에 나섰다.
2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는 전거래일보다 5원40전 내린 1,098원20전에 장을 마쳤다. 1,100선 밑으로 하락한 것은 지난해 9월9일(1,077원30전) 이후 13개월여 만이다.
이날 환율은 20전 떨어진 1,103원40전으로 개장한 직후 하락폭을 키우며 1,100원대 초반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장 마감을 앞둔 오후2시52분께 1,100원선이 깨졌다. 지지선인 1,100원선이 깨지자 하락속도를 높여 마감 직전 1,097원70전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이건희 외환은행 선임딜러는 "매도물량이 많아지면서 장 막판에 환율이 급박하게 움직였다"면서 "조용했던 딜링룸도 갑자기 요란해지며 거래량도 급증했다"고 말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박스권 바닥'을 의미했던 1,100원선이 깨졌다"면서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반영된 것인데 앞으로도 방향성은 원화강세 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수출기업은 곧바로 대책마련에 나섰다. 현대자동차그룹이 환율 추가 하락에 대비해 보수적인 경영계획을 세우겠다고 선언하는 등 업계도 본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분위기다. 이미 절반 이상의 수출기업은 환율급락으로 환차손을 입었다. 현대ㆍ기아차의 경우 수출 비중이 75∼80%를 차지하기 때문에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매출은 2,000억원(현대차 1,200억원, 기아차 800억원)이나 줄어든다.
외환당국은 아직 환율이 예상치를 넘어설 정도로 급락한 것은 아니라면서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당국의 개입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원화강세로 수출기업의 타격은 물론 자산 버블도 나타날 수 있다"면서 "외환당국도 환율하락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선진ㆍ신흥국 간 환율전쟁이 시작됐는데 우리만 그 전쟁을 바라만 보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