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급두뇌 유출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 내용이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바이오ㆍ대기ㆍ농업 등 이른바 차세대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연구인력의 유출이 두드러지고 있어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고급 인재들이 국내에서 역량을 펼치기보다 미국에 그대로 눌러앉는 경우가 많아 미국은 두뇌 ‘블랙홀’로서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고급 두뇌의 ‘배출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자조적인 표현이 나올 정도이다. 미래의 성장을 끌어갈 핵심 두뇌를 고스란히 미국으로 넘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국립과학재단(NSF)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박사학위 취득자 가운데 미국에 남게 된 인재 비중은 지난 92~95년 전체의 20.2%에서 2000~2003년에는 46.3%까지 늘어났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과학기술 관련 인력들의 잔류 선호도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차세대 성장산업인 바이오 및 농업 부문의 경우 92~95년과 2000~2003년 중 박사학위 취득자 수는 818명에서 705명으로 감소했지만 이 가운데 미국에 남게 된 잔류자 비중은 38.4%에서 61.4%로 거의 배로 늘었다. 아직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한 박사들 가운데서도 미국에 남기를 희망하는 잔류 계획자 비중은 56.2%에서 무려 84%까지 늘어났다. 물리학ㆍ지구ㆍ대기ㆍ해양과학 분야에서는 잔류 계획자 비중이 같은 기간 동안 58.4%에서 79.7%로, 수학 및 컴퓨터 분야에서는 34.1%에서 76.5%로 각각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기회만 닿으면 미국에 남겠다는 인력이 날로 증가함에 따라 미국의 두뇌 흡인력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고급 두뇌의 미국에의 이동 규모는 90년 약 620만명에서 10년 후인 2000년에는 1,035만명으로 1.6배나 증가했다. 반면 한국은 고급 두뇌를 내주기만 할 뿐 외국의 고급 두뇌를 유인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나 연구ㆍ기술지도 등을 위해 국내에 체류하는 고급 외국 인력은 전체 국내 거주 외국인의 0.2%에도 못 미치는 실정.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한국을 찾는 학생 수도 전체 박사과정 학생의 2% 수준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평균치인 13.2%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고급 두뇌 유출 현상이 앞으로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미국 비자 자격조건이 완화되면서 단기적으로 두뇌 유출에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도 고급 두뇌 시장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무한정 인력이 빠져나가지는 않겠지만 두뇌 이탈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국 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했을 때의 얘기다. 게다가 이번 협정안에 교육시장 개방이 제외됐다는 점도 장기적으로 두뇌 유출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 개방을 통해 교육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고급 두뇌 붙잡기에 장기적으로 악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