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한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뿌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칭찬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밥값도 못한다'고 하면 그것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다. 밥값 하는 수준은 직업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대체로 1년간 받는 연봉에 걸맞은 일을 하고 있느냐가 잣대라고 할 수 있다.
△19대 국회의원의 연봉(세비)은 1억3,796만원. 지난 18대보다 20.3%(2,326만원)나 인상됐다. 이는 매월 1,150만원 수준으로 장관보다 약간 적지만 차관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여기에 특수활동비, 차량 유지 및 유류비와 국내 공무수행 출장비, 정책홍보물 발간·발송비 등 각종 명목의 지원비가 따로 나온다. 의정활동을 위해 밥값을 내야 하는 경우 별도 신청하면 연간 595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지난 2011년 9월 기준으로 국회의원 1명당 연간 평균 2,800만원, 최대 5,520만원을 밥값으로 썼다는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식충이'나 '밥버러지'는 밥값을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인 조해진 의원은 지난달 원자력방호방재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되자 "국회 스스로 밥버러지 같은 취급을 자초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미방위에 계류된 법안이 341개에 달하는데 지난해 정기국회와 3월 임시국회에서 다룬 법안은 '제로(0)'상태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의회가 밥값을 못한다며 의정생활을 접는 의원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상·하원에서 34명이 오는 11월 중간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퇴임의 변이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소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일 안 하는 의회라는 오명 속에서 꽤나 자괴감을 느꼈을 듯하다. 밥값 못하면서 꼬박꼬박 세비는 챙기고 특권 내려놓기에 인색한 우리 국회의 모습과 대조된다. 언제쯤 밥값 제대로 하는 대한민국 국회를 볼 수 있을까.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