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왕국' 일본이 가전제품 순수입국으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불황과 엔고(円高)에 시달려온 가전업체들이 경비절감을 위해 내수제품도 대부분 해외 아웃소싱에 의존하게 된 결과다. 일본 시장에서 도시바ㆍ소니 등 자국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는 여전하지만 과거 전세계를 열광시켰던 '메이드 인 재팬'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디지털 가전제품 수입액이 처음으로 수출액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고 21일 보도했다. 일본 전자정보기술산업협회(JEITA)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텔레비전이나 비디오카메라 등 음향ㆍ영상(AV)기기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62% 급증한 7,691억엔을 기록해 같은 기간 1% 늘어난 7,620억엔에 그친 수출액을 앞질렀다. 연간 기준으로도 순수입으로 돌아선 것이 확실시된다. 특히 액정TV의 경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3% 줄어든 80억엔에 그친 반면 수출액은 2.7배나 늘어난 3,168억엔에 달해 수입이 수출의 4배에 육박한 지경이다. 냉장고 등 백색가전의 경우 수출입이 역전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10년 전부터 수출액을 초과하는 일본의 백색가전 수입액은 지난 2009년 현재 6,000억엔을 넘어서며 수출액의 3배에 달하고 있다. 이렇듯 메이드 인 재팬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는 것은 주요 가전업체들이 경비절감을 위해 제품 생산을 대만 등 위탁생산 전문업체에 돌리거나 자체 공장을 국내에서 동남아 등지로 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니의 경우 현재 일본 내 공장은 단 한 곳만 남겨뒀으며 도시바도 TV제품은 대부분 대만 업체에 생산을 위탁하고 있다. 디지털 가전 분야에서 유일한 수출 초과 항목인 비디오카메라ㆍ디지털카메라의 경우도 여전히 수출액이 수입의 5배를 웃돌고 있지만 해외 아웃소싱은 이미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조사업체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디지털카메라 업체의 해외 아웃소싱 비율은 45%에 달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비디오 제조사인 일본빅터의 경우 지난해 8월에 비디오카메라 국내 생산을 완전히 중단, 모든 생산설비를 말레이시아 공장으로 옮겼다. 이 같은 가전제품 수입 증대가 일본 시장에서 자국 브랜드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소니나 도시바 브랜드의 '메이드 인 타이완' 제품이 늘어나기는 해도 자국 브랜드에 대한 일본 소비자들의 충성도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최근 일본 가전양판점 점유율 90% 이상인 GfK재팬의 조사 결과 주요 디지털 가전 10개 품목의 일본 시장 점유율 1~3위의 대다수는 여전히 일본 브랜드가 독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계는 애플이 MP3플레이어, 휴대폰 단말기 시장에서 각각 1ㆍ2위를 차지하고 프린터 부문에서 휴렛패커드가 3위로 올라선 정도다. 다만 지난 수 년간 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했던 상위 1ㆍ2위 기업들의 점유율 합계가 지난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일본 전자제품 시장의 과점구조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해 틈새를 노리는 외국계 기업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