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이례적으로 달러약세를 우려한 것은 이로 인해 미국의 수입물가가 올라 인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지고 최근 원유를 포함한 원자재가격의 급등원인이 달러약세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외환시장에서는 FRB가 달러약세를 저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버냉키 의장의 달러강세 지지 발언을 계기로 미국이 달러약세 정책을 포기하고 강세로 전환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지난 2002년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 기간을 관통하며 유지해온 암묵적 약달러 정책이 미국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기보다는 미국 경제에 인플레이션이라는 부메랑을 돌아오게 했다는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달러는 유로화에 대해 40%, 엔화에 대해 26% 각각 하락했고 주요통화를 바스켓 개념으로 종합할 경우 평균 25% 절하됐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수지는 줄어들지 않았고 미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은 일본에 대해 향상되지 않았다. 1985년 플라자협정 이후 장기간 달러약세는 미국 자동차 경쟁력을 되살려 일본을 따라잡게 했지만 지금은 일본에 추월당했다. 오히려 달러약세는 수입가격을 올려 인플레이션 부담을 가중시키고 투자처를 잃은 투기자본이 상품시장에 몰려 국제유가는 물론 상품 가격의 고공행진을 유발했다. 미국의 정책으로 전세계가 고통을 앓고 있는 모순을 미국이 뒤늦게 인식한 것이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이 주목 받는 것은 외환시장은 재무부 장관에게 맡기고 가급적 언급하지 않는다는 관례를 벗어났을 만큼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버냉키 의장이 미국 달러를 FRB의 레이더 스크린 위에 올려놓았다”고 비유했다. 뉴욕 멜론은행의 마이클 울포크 수석 외환전략가는 “FRB 의장이 달러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버냉키의 발언을 통해) 달러가치의 터닝 포인트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달러화의 가치는 리먼브러더스의 실적악화 등 미국 금융시장의 신용위기에 대한 우려로 하락세를 보이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이 전해지며 강세로 돌아섰다. 2차 신용위기 재발에 대한 우려로 시장의 투자심리가 얼어붙는 시점에 그의 발언이 나오며 시장이 안정을 되찾은 셈이다. 일본 외환거래회사인 우에다할로우의 이시카와 마사노부 외환딜러는 “FRB 의장이 달러가치가 더 이상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며 “더 이상의 금리인하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달러가치가 더 오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의 의도와는 달리 달러가 약세로 돌아설 경우 FRB로서는 시장에 개입할 수단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리를 올려 달러강세를 유도하자니 미국의 경기침체가 아직 진행 중이고 FRB가 달러 매입에 나서자니 아직도 신용경색이 풀리지 않아 달러를 풀어야 할 형편이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FRB가 달러약세와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사실상 당분간 금리인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다음 금리결정 회의는 오는 24~25일 예정돼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버냉키 의장은 경기가 심각한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벗어난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며 “FRB가 금리를 인하하기 위해서는 시장에 더 나쁜 뉴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김정곤기자 mckid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