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이종환 산업부장(부국장) jwlee@sed.co.kr
“중동 및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산 제품에 대해 갖고있는 관심은 현지를 가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입니다. 특히 중동은 이라크전 이후 시장 전체가 활력이 넘치는 상황입니다.”
오영교 KOTRA 사장은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의 가능성에 대해 강한 믿음을 드러냈다.
오 사장은 특히 “한국의 국가이미지와 기업들의 브랜드이미지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것을 실제로 느낀다. 최근 글로벌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기업들의 활약상은 대단하다”며 “이 정도 여건이라면 앞으로 미국과 중국에 편중된 수출 대상국가를 자신있게 확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부터 10월3일까지 이라크 바그다드와 케냐 나이로비에서 잇따라 열린 한국 상품전을 돌아본 후 4일 귀국한 오 사장을 만나 북핵문제와 경기 침체 등 국내외 변수가 혼재돼 있는 `수출 한국호`의 미래와 우리나라의 수출확대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이라크전이후 `중동 특수`에 커다란 기대를 걸었는데 정작 현재까지는 효과가 크지 않습니다. 여기에다 미국의 요구로 한국군의 파병문제가 민감한 사안이 됐습니다. 중동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은 어떻게 짜여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미국이나 일본의 기업들은 `국가 프리미엄`을 가지고 이라크 주변국에서 굵직굵직한 바이어들과 잦은 접촉을 갖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 국가는 이미 중동지역에 막대한 투자를 해 놓은 상태입니다.
우리로선 미국이나 일본 방식으로 중동시장을 접근해선 안됩니다. 현지 문화의 특성상 지금은 신뢰구축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지요. 절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 `노다지`를 캐러 왔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달 27일 KOTRA는 전쟁으로 페허가된 바그다드 한 복판에서 `수출 상품전`을 개최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눈에 띄는 큰 성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라크 재건을 위해 질 좋고 가격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제품을 치안문제로 아무도 찾지 않는 바그다드 현지에 들여와 직접 소개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치안이 불안해 단 하루로 그친 수출상담회였지만 6,800만달러의 상담실적과 3,200만달러 수출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대장정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계플랜트ㆍ위성방송수신기ㆍ 휴대폰 등 일본을 앞서기 시작한 한국산 제품들을 가지고 직접 현지를 찾아가 진지하게 시장을 개척한다면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기업들의 독자적인 노력만으로는 중동시장에 효과적으로 착근하기가 쉽지않아 보입니다. KOTRA의 도움이 어느 지역에서보다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맞습니다. 기업들의 노력에다 KOTRA의 조직력이 보태지면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KOTRA 현지 주재관들의 여러 정보보고 및 시장 판단보고서들을 살펴볼 때 앞으로 중동시장은 이라크를 중심으로 크게 두개의 시장으로 나눠질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는 일상적인 내수시장이고 나머지는 전후 복구시장입니다. 내수시장은 생활용품 위주의 제조업 제품들이 주요 공략 대상입니다. 내수시장 공략을 위해 지속적으로 한국상품전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바그다드 상품전을 내년까지 한달에 한번 이상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것을 물론 중동 물류 거점인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에서 올해말 대규모 상품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두바이에서 열릴 한국 상품전은 이라크 시장 뿐만 아니라 중동ㆍ아프리카 전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주변국은 전쟁이전 오일달러 상승으로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복구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 정부와 중동의 대규모 바이어들과 잦은 접촉을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현재 진행중인 이라크 재건 사업은 모두 현지 바이어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KOTRA가 구축한 중동지역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우리나라 기업의 기술력을 소개하는 데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케냐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상품전을 개최하고 오셨습니다.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프리카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사실 현지 경제여건은 썩 좋아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90년부터 흑인정부가 들어서면서 서방국가들의 지원이 줄어,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지금의 아프리카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그나마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중심으로 남부경제권과 케냐를 위시한 동부경제권이 아프리카 지역에선 가장 수입수요가 많은 곳입니다.
그런데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현지에서 한국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일본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더군요. 정말 놀랐습니다. 그동안 삼성ㆍLG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많은 투자를 병행하면서 진출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들은 아직도 한국의 투자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병원이나 학교를 지어주면서 좋은 이미지를 쌓아간다면 제품 수출은 훨씬 더 늘어날 수 있을 겁니다. KOTRA역시 아프리카 지역에서 문화행사와 수출상품전을 병행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번 케냐 방문을 통해 먼저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 심기에 주력한다면 한국산 제품이 머지않아 아프리카에서 1등 제품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시장으로 화제를 돌려볼까요. 중국은 어느새 우리나라 제1의 수출대상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면서 각종 수입규제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국과의 교역 및 통상정책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중국에 대한 수출이 늘어남에 따라 중국이 우리에 대한 수입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철강, 화학, 섬유 등 우리와 경합하고 있는 분야에 집중되고 있는 만큼 하루 속히 첨단 기술분야, 고부가가치 분야로 산업구조를 전환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최근 핸드폰에 대한 수입규제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첨단제품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높은 중국에서 단호한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런 시기에 철두철미한 대비가 있어야 합니다.
통상전략 차원에서 중국과의 쌍무협정을 통해 무역분쟁을 해소하는 한편 정부 차원의 새로운 통상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도 선행돼야 합니다. 기업들도 중국의 공급과잉 구조를 감안한 품목별 마케팅전략을 개발하고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중국내 법ㆍ제도의 내용을 사전에 숙지해 불필요한 통상마찰을 피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미국시장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한국으로선 가장 중요한 수출시장인데 최근 미국이 한국산을 포함해 수입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합니다. 대응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바이어와 공급자가 제한적으로 움직이는 정부조달물품과 같은 특수마켓을 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조업 수출에만 의존하다가는 미국 수입시장에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얘기지요. 우리는 이미 중국과 중남미 국가들의 가격경쟁력을 따라잡기 힘든 생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정부조달 시장은 공인된 제품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만, KOTRA는 지난 2000년부터 우리기업들의 미국 조달시장 진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 조달시장은 연간 5,000억달러에 달하고 여기에 UN(국제연합)까지 합치면 7,000억달러입니다.
-얼마전 참여정부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다국적기업의 CEO(최고경영자)와 아시아본부장들을 초청한 대규모 `허브코리아`행사가 열렸는데요. 해외 투자가들이 바라는 한국의 투자 여건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노사문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군요. 이번에 40여개 다국적기업의 CEO들과 아시아본부장들이 한국을 다녀갔습니다. 그들은 의외로 북핵문제보다는 한국의 노사분규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투자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노사분규라는 얘깁니다. 이번 행사기간 동안 KOTRA는 참석자들에게 부산, 광양, 인천 등 산업단지를 소개하고 지리적으로 동북아 중심에 서 있는 한국을 소개했습니다. 노사문제제 안정적이라는 이미지가 부각되고 외국인들이 들어와 살기좋은 교육ㆍ생활 여건을 구비한다면 동북아허브가 결코 멀리 있지만은 않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 오영교 사장 `신수출전략`
“21세기 수출전사는 뛰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또 수립된 수출전략을 부단히 현실화해야 합니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수출전선에서는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어요. 책상머리에 앉아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오영교 사장은 요즘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발로 뛰는 수출`을 직접 실천하고 있다.
오 사장이 올해초 개인적으로 설정한 목표는 `현장을 직접 확인하면서 시장분위기를 파악하고 수출을 독려한다는 것`이어서 일주일이 멀다하고 시장개척단을 쫓아다니고 있다.
KOTRA가 올해 국내외 전시회에 참가한 횟수는 159회로 역대 최다 기록. 하지만 올해 연말까지 대기중인 것들을 감안하면 KOTRA 시장개척단이 해외로 나가는 횟수는 모두 174회 정도가 된다. 줄잡아 `이틀에 한번`꼴이다.
이 같은 현장경영을 바탕으로 오 사장은 요즘 틈새시장에 부쩍 주목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미국의 히스패닉계 등 이미 상당히 커다란 시장이 형성됐거나, 미래의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도 남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곳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원화 시대에 한 가지 무기로 전장에 임하는 것은 자멸행위나 다름없어요. 21세기 수출전략은 과거 수출진흥 일변도에서 벗어나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등 특화전략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오 사장은 특히 EU(유럽연합)시장 개척에 대형할인점을 첨병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독특한 전략을 제시했다.
“E마트를 보십시오. 거대시장 중국에서 한국을 알리는 첨병노릇을 훌륭히 해내지 않았습니까. 이런 강점을 살려 유럽의 거대시장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소비자의 생활에 밀착된 대형유통점 진출이 성공할 경우 여타 한국상품의 유럽진출에 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약 력
▲48년 충남 보령 출생
▲73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85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 석사)
▲92년 상공부 공보관(이사관)
▲97년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
▲99년 산업자원부 차관
▲2001년 4월 KOTRA 사장(현)
<정리=한동수기자 best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