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자의 눈] 미군 1개 사단과 GM

한국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해 무장공비 청와대습격사건, 울진공비습격사건이 있었고 1월23일에는 미국 군함 푸에블로호 납치사건까지 있었다. 싸우면서 건설한다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이때를 전후한 것이라고 오원철(吳源哲) 전 청와대 경제2수석비서관은 회고했다.세기말과 새로운 세기를 앞둔 99년 12월. 6·25 후 최대 국란이라는 IMF쇼크로 쑥밭이 된 대한민국 서울에 세계 최대자동차 메이커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대우차를 사겠다고 나타났다. 일각, 특히 대우자동차 채권단에선 「핵추진 항공모함」이 국내에 진주하는 것과 같다며 가격만 맞는다면 GM에 넘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희색하고 있다. 대우차의 GM매각은 당장 채권단이 위기를 피할 수 있게 하고 현대차의 독점구조화된 국내 차산업을 경쟁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 또 GM은 기존 IMF경험국이 그랬든 제2의 경제위기가 오면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GM은 「GM에 좋은 것이면 미국에도 좋다」는 논리로 미국 의회와 맞서 힘을 보여준 거대기업이다. 하지만 GM에 대우를 넘기기에 앞서 「새로운 세기에 우린 무얼 갖고 살아갈까」라는 진지한 논의가 실종된 현실에 아득함을 느끼게 한다. 브라질과 칠레 등 IMF 선(先)경험국들은 1차 경제위기를 겪으며 글로벌 경제체제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다국적기업이 제조업을 완전 장악해버린 그곳에서 2000년대 나라경제를 이끌 주력산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뚜렷한 대답을 해주는 관료나 경제학자를 찾지 못했다는 외신보도가 날아들고 있다. 자동차는 외국에선 「신이 내린 선물」이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선진 강국만이 손댈 수 있고 수준이 떨어지는 국가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자동차산업의 특성을 비유한 말이다. 세계는 지금 직접적인 군사전쟁이 아닌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GM은 군사전에선 항공모함 역할을 하겠지만 경제전에선 우리에게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국차의 지난해 수출물량은 우리 전체수출량의 7.5%, 제조업고용의 8.3%를 차지하고 있고 지난 25년간 국가기간산업 자리를 지켜왔다. GM 대신 업종전문화에 묶여 있는 삼성자동차가 인수토록 하는 대국적인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될 때가 됐다. 삼성에 좋은 것은 한국에 좋을 수 있어도 GM에 좋은 것은 한국에 좋은 것이 될 수 없다. 정승량기자S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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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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