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가 장기화하고 심해지는 동시에 원화 절상이 이뤄지면서 우리 경제의 피해가 점차 가시화하는 모습이다. 하반기 들어 우리 수출이 빠른 회복세를 타는 듯했으나, 환율 변수에 가로막혀 주춤해진 모습이다.
이렇게 되면 수출 호조세를 바탕으로 연말부터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봤던 우리 정부의 예측도 어긋날 수 밖에 없다. 특히 올해 내내 잠재적인 위협으로 거론되던 엔저의 영향이 실질적인 위기의 진앙으로 다가오면서 우리 수출 기업들의 피로도가 극심해지고,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도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원ㆍ엔 환율 900원대로 가나…밀리는 한일 수출 경합도=지난해 말 시작된 엔저는 이제 장기간 고착화될 흐름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의 원ㆍ엔 환율 예측치는 내년 3분기 평균 100엔당 세자릿수대인 996.0원까지 하락한다. 일본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서는 등 아베노믹스를 본격화하면서 엔화 약세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원화는 10월 역대 최대 경상흑자(95억달러)를 거두며 강세 압력을 받고 있다. 현재 달러당 1,050원 선인 원ㆍ달러 환율이 내년에는 1,020원까지 내린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시장에서 한ㆍ일 제품간의 경합도는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11월 수출입 통계치에서는 일본의 영향력이 큰 아세안(ASEAN)으로의 한국 수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원화 가치 상승, 제조업 수익성 악화 불 보듯= 엔저와 동시에 이뤄지는 원화 절상은 우리 경제의 주축인 제조업의 수익성에 본격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일 내놓은 ‘원화 절상이 제조업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를 통해 “원화가치가 10% 오르면 우리 제조업체의 매출액은 3.4% 포인트, 영업이익률은 0.9% 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원화 가치가 오르면 제조업체의 수출품 매출은 감소하는 반면 수입 원재료비 부담은 줄어드는데, 분석 결과 환율 급락에 따른 매출 감소 효과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 “전기전자, 수송장비, 일반기계, 정밀기기, 섬유가죽, 금속 업종은 환율 요인을 수출 단가에 반영할 수 있는 여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며 “정부가 외환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환율 미세조정에 나서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율변수에 막힌 경기 회복, 내년에는 더 힘들어=엔저와 원화 절상은 해외시장에서 우리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일본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을 키워 우리 기업에 타격을 입힌다.
당장 가장 우려되는 분야는 자동차 수출이다. 올해 1∼10월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일본 도요타, 혼다, 닛산 등은 모두 8~9%의 판매 신장세를 보인 반면, 현대ㆍ기아자동차는 작년보다 판매가 0.9% 줄어들었다.
이를 모두 엔저에 따른 결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환율 변수가 우리 산업계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엔ㆍ달러 환율이 100엔, 원ㆍ달러 환율이 1,000원까지 됐을 때 우리 수출 증가율은 2.0%포인트 줄어들고 경제성장률이 1.8%포인트 하락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기계산업의 수출이 7.5%, 자동차가 6.4%씩 줄고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하는 수출기업도 현재의 33.6%에서 68.8%로 늘어난다고 봤다. 내년에 이런 상황이 현실화 될 경우 정부가 3.9%로 예상하는 내년 경제성장률도 크게 낮아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sedc.o.kr